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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포리에서 |
| 정영선 |
1
외포리에 와서 바다는 그 길을 지워버린다 마침표로 남은 뻘
밭에는 나의 수치의 기억 같은 게구멍들이 숱하다 산맥으로 가
고 싶은 산을 어르고 있는 속이 깊은 바다도 얕은 물살을 거느리
고 산다 장난처럼, 횡포처럼 게구멍을 깔깔거리며 건드리고 건
드린다 언덕에는 들풀들이 빽빽이 모여 바람을 가두고 싶어한다
풀들이 바람의 길을 막느라 게들이 줄줄이 쏟아나와 같은 기울
기로 기울어질 좌표가 없어 뿔뿔이 흩어져간다. 끝내 세상을 산
책만 한다 전진도 후진도 옆걸음 길이 끊어진 곳에서의 삶이란
이런 걸까 길을 버린 배 한 척이 와글와글 땡볕만 태운 채 기우
뚱해 있다
2
바닷바람에도 씀바귀들이 노란 꽃을 피우고 있다 놋쇠 같은
검은 남자가 깊은 눈을 끔벅이며 그물을 깁는다 촘촘한 그물로
도 건져올릴 수 없었던 어느 인연을 그는 생각하는 걸까 햇살들
이 저물녘의 모기떼처럼 목덜미에 달겨들어도 그는 묵묵하다 한
땀씩 엮이어드는 그의 침묵의 무게만한 납덩이들, 생의 바다에
서 그가 잡은 물고기를 그의 외곬수가 먹고 시름이 먹고 마지막
뼈만 남은 진실이 그의 몫이어도 그는 그물을 내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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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를 못 해서 |
| 정익수 - 상주 청리국교 3년 |
나는 공부를 못 해서 걱정이다.
집에 가마 맞기마 한다.
내 속에는 죽는 생각만 난다.
1963년
*가마 : 가면
맞기마 : 맞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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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밖 느티나무에다
구름바다
그만 대문 밖 느티나무에다
――― 납같이 무거운 텅 빈 하늘이다.
지난날 내가 방황한 길같이 어둡고 험하진 않아도
보라 까마귀 떼 공중 높이 날고 울음소리 예사롭지 않은가?
창백한 길과 어두운 숲을 젊은 날엔 혼자 헤매며 다녔으나
내가 처한 운명에 순응하듯 저항 한번 없이
그럴만한 담력이나 단호한 결심 하나 없이 한 몸으로 헤쳐 나갔다.
그래 저녁 헛간에 스며든 힘 하나 없는 어스름 황혼에다
노년을 걸고 있으니 내 집 좁은 뜰 만치 나도 답답하다.
어둑한 방에 앉아 종일 궁리하고 잡념만 많아도
여명이 창문에 닿아도 새들 우는 소리 들려도 매번 무심하다.
노래 없이 살아온 내 인생지락 또한 이같이 무미하다.
어두운 강물로 흘러가 너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여
지난날 즐거움조차 기다린 날의 순간보다 덧없이 지나
그만 대문 밖 느티나무에다 허망한 시선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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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