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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일락 |
| 정해종 |
내가 세 들어 사는 집 대문 옆에는 커다란 라일락이 한 그루 자라고
요 그 라일락 그늘에 늙은 개 한 마리 세 들어 삽니다 봄바람이 늦바
람을 몰고 와 요즘 들어 녀석의 귀가가 늦습니다 일찍 혼자된 주인 아
주머니의 끌탕이 잦아지고 매사가 민망한 녀석은 주인보다 저를 더
따르지요 동네 구석구석 염문을 뿌리고 다니던 녀석이 늦은 밤 대문
앞에 죽치고 앉아 저보다 늦게 들어오는 나를 기다립니다 라일락 피
고부터 밤새 라일락 눈꽃들이 떨어져 내 오래된 차를 뒤덮고요 나는
라일락 꽃잎들을 바람에 날리며 세상 속으로 출근을 합니다 이따금씩
머리에 달라붙어 회사까지 따라오거나 주머니 속에서 튀어나오는 꽃
잎들 언제부턴가 암캐는 보이지 않고 녀석은 라일락 그늘 속에서 잃
어버린 사랑을 앓습니다 나도 무언가 앓고 있긴 한 것 같은데 그게 뭔
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어느 늦은 밤 달빛 아래서 녀석의 하염없는 눈길
과 마주칩니다 그 사이에도 라일락 꽃잎들은 분분히 떨어져 내리고
아마 녀석과 나는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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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로움 |
| 김소영 - 서울 공항 3년 |
내 짝은 맨날 나를 괴롭힌다. 공부 시간에는 의자를 발로
자꾸만 차기 때문에 공부도 못한다. 지금도 이 글을 못 쓰
게 한다. 난 아무래도 자리를 바꾸어 앉아야겠다. 내 짝은
아주 못된 아이라고 생각한다. 미웁다고 때릴 수도 없고 참
속이 터진다.
또 내 옆에 임인종도 날 괴롭힌다. 그러니까 양쪽에서 괴
롭히니 더 공부가 안된다. 그전 목요일은 임인종이 때렸
다. 살살 때린 것도 아니라서 아파서 울었다. 나는 꼭 지옥
에 온 것 같다. 내 짝이 난 정말로 없었으면 좋겠다. 또 이
것만이 아니다. 앞에 앉은 탁원진도 나를 괴롭힌다.
나는 왜 이렇게 복이 없을까? 정말 세상에서 살지 않았
으면 좋겠다. 사는 게 무언지 사는 것이 지겹고 괴롭다.
2학기 때는 짝을 바꾼다. 빨리 그 세상이 빨리 오면 좋겠
다. 지겹다. 2학기가 와서 짝을 바꾸면 내 마음이 시원할
듯 한데, 또 짝을 바꾸었을 때도 괴로우면 난 정말 미쳐 버
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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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가에 제비꽃
행복한
아버지 안녕하셨지요.
산 모퉁이 돌면서 부터
아버지 누우신 자리 한 눈에
달려듭니다.
그 모습이 반기시는 듯 여겨집니다.
꿈 속에 간간히 모습 보이시더니
이제는 영 안 보이시니
정말로 좋은 곳에 가셨나봅니다.
파랗던 잔디
이제는 금빛으로 물들었네요.
지난 여름 더위를 어찌 이기셨는지...
더위 못 견디는 분이다-하면서
냉수부터 챙기십디다.
당신의 남은 반쪽은
상을 차리며 보니
제비꽃 몇송이 피었습니다.
어두웠던 얼굴 많이 환해진 어머니
보라색 작은 꽃잎에
안색이 더 활짝 펴집니다.
님을 본듯이, 만난듯이...
걱정도 마시고
아픈 고통도 이제
떨치셨으니
훨 훨 바람처럼 나들이나
다니셔요.
내년 가을 이맘때면
가슴저림 많이 무뎌지고
무덤 뒤돌아 앉은 당신의 막내도
웃으면서 아버지께 절 올리겠지요.
영 낳지 않을 것 같은 가슴아픔도
이렇게 나아가는데
육신의 아픔 떨치기 그리 어려웠나
어떤 땐 세상사 부아가 치밉니다.
고통없는 세상에 가셨으니하고
남은 사람들은 서로들 위안합니다
그래도 가끔
파리한 안색 꿈에서 뵐때면
뵐 수 없어도 좋으니 편찮치만 마시라
기원합니다.
아버지 또 올께요.
자주는 못 오겠어요.
여기 누우셨지만 여기 계신듯이
와지지는 않네요.
아버지와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게나 달라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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