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민들레 압정

이문재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4월 12일 - 혼분식 하기

박주희 - 대구 대봉국교 2년

4월 12일 - 혼분식 하기
엄마께서는 혼분식을 하라고 하신다. 그러나 나는 이제
까지만 해도 쌀밥만 먹었다.
엄마께서는 밀가루 음식도 먹어야지 살이 찐다고 하셨
다. 라면, 국수, 수제비 등을 해놓으면 나는 꼭 밥을 먹는
다. 밀가루 음식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밥상에는 보리쌀을
섞은 밥이었다. 나는 먹기 싫다고 했었는데, 내가 잘못했
다는 것을 알겠다. 이제부터 혼분식을 하는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

4월 13일 - 목련꽃
목련꽃이 하얗게 피기 시작할 때 우리 집 화단에는 완
전히 봄이 왔다.
꽃은 예쁜데 너무 빨리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다.
그 예쁜 꽃이 오래오래 피어 주었으면 좋겠다.

4월 14일 - 봄비
우리 집 화단에는 해당화, 라일락, 매화꽃이 피기도 하
고 봉오리를 맺은 것도 있다.
그런데 심술궂은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꽃잎이 모두
떨어졌다.
비가 오면 나무가 파랗게 더 자라고 공기도 맑은 것 같
아서 좋은데 예쁜 꽃을 울려서 얄밉다.

4월 15일 - 감광지
자연 시간에 선생님께서 감광지를 사 오라고 하셔서 처
음으로 감광지하는 것을 샀다.
그런데 자연 시간이 있는 날은 구름이 끼어서 못했는
데, 오늘도 숙제를 청사진 만들기를 내셨는데 오늘도 구
름이 많이 끼어서 못했다. 빨리 청사진을 만들 수 있도록
햇빛이 쨍쨍 났으면 ......

화가 난다
솜털구름

화가 난다.
화가 치밀어 앞을 내다보지 않는 행위에 침을 밷어,
삶을 마감하고 싶은 심정이다,
사는 방법도 여러 가지 죽는 방법도 여러 가지
그래 어떻게 사는냐의 별로 문제가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선 상태의 나는
어떻게 미쳐가는냐에
심취해야겠지
그래 어떻게든 이런 더러운 기분은 날려버리고
굳굳한 인생을 살아야겠지,
나의 의문점을 남기는 행위
내가 나아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인생을 판가름 해야하는지.
부모란 존재에 다시금 의문점을 삼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
바퀴벌레를 씹어 삼기는 기분으로 이 글을 써 내려간다,
참고, 참고 또 참은 꿀꺽한 침은
죽음으로 가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만들고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닥의
희망을 걸어야할 이유도 없다.
그래 무관심처럼 처절함도 없다
나도 없는 냥 방관하는 건 어떨까?
방관 방관
존재의 싱빙성에 의문을 갖지않는
그저 그렇게
강이 흘러가듯
비오는 땅에 매마르듯
흐르는 대로
시간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가치없이 느껴지는
나를 버리는 것.

운명을 맞겨 이리저리
가는 것
아니야
이렇게 살아가는 것은
이제까지의 나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러면 문제는 어떻게 하는가?

그냥 삶을 마감하는 방법이 가장 수월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일인 것 같다.
항상 어려운일이 있을때마다
생각해야했던
나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들.
죽음을 문턱을 갈망해야 했던 아름답고도 고궈한 운명을 갈림길.
장미빛으로 살을 물들이고
아픔으로 해매야하는
핏빛 세레나데의 음악을 울리면
아무것도 없는 종교적 갈등도
신비주의도 없는 무소유의 참된 삶을 실천하는
그런 때가 오는 것이겠지.
그런 것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