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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공주 |
| 김혜순 |
그녀가 온다. 북을 둥둥 치며 온다. 하늘의 고막을 둥둥 울리며
온다. 벼락을 안고 오는지 대문이 저절로 무너진다. 그녀가 온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마음이 내게로 온다.
내 마음이 둥둥 울린다. 이렇게 두꺼운 아버지의 고막을 찢고 그
에게 가리. 나는 마치 바다를 깔고 누운 것 같다. 커튼을 치고, 뇌
파를 차단하고, 아아 그녀가 떠들썩한 텔레비전 방송국을 망치로
내리친다. 베개에 피가 번진다. 내 온몸의 세포가 나를 떠나려 한
다. 심장이 번개처럼 갈라진다. 나는 벼락 맞은 땅처럼 아프다.
그녀가 온다. 내 몸속으로 온다. 일곱 시간째 걸어온다. 파수병이
깰 것이다. 아 아 아버지의 군대도 깰 것이다. 잘 당겨진 북처럼
팽팽한 하늘을 달이 텅텅 친다. 그녀가 온다. 태풍의 눈을 둥둥
두드리며 온다. 나는 그녀가 잘 지나가라고 내 몸을 판판하게 펴
준다. 내 몸 위로 말발굽이 지나간다. 그녀가 내 몸속에 칼을 높
이 치켜든다. 어디선가 전투기들이 출정한다. 멀리서 온 북양함
대가 전멸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이 폭발한다. 궁성의 우물들이
넘쳐흐른다. 그녀의 눈 속에서 샘물이 철철 솟아 흐른다. 안 보이
던 별들이 비오듯 쏟아진다. 물쥐들이 머릿속을 갉아먹는다. 그
녀가 온다. 아직도 온다. 아버지의 궁성이 땅속으로 꺼지고 거기
서 연못이 솟아오른다. 수양버들이 미친 듯 흔들린다. 그녀가 운
다. 천둥 번개를 안고 운다. 아버지의 북이 둥둥 울릴 때마다 내
안의 병사들도 출정한다. 내 몸속에서 시냇물처럼 소리치며 쉼
없이 흐르던 칼의 바다. 그녀가 나를 부른다. 그녀의 쓰라린 맨
발이 둥둥 내 빈 가슴을 울린다. 내 몸속 우물이 철철 넘쳐흐른
다. 아 아 아버지. 이 북을 찢고 그를 만나러 가리. 그녀가 울면
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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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誓願 |
| 부산에서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치면서 시를 쓰는 분 |
서원誓願
- 인도에 가는 아들에게
먼 나라 인도
오래된 고향 둥게스와리
고요가 헐떡거리는 혀를 숲그늘에 묻는다
척박한 땅은 아직도 기아와 질병을 천형처럼 물고 있다
풍요와 숙명이 동거하는 그 배반의 언덕에
아들아, 나무 한 그루 심어 오너라
어느 바위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는다
그 모순의 나라 인도에서
크게 한 번 죽어라
죽어서 고통을 먹고
슬픔을 숨쉬어 새로이 태어나거라
아들아, 허물을 벗어야 날개를 달 수 있다
진정한 것은 힘이 되어야 한다
고통은 늘 믿을 수 있는 안내자였다
슬픔은 인생의 보증수표였다
아비가 줄 수 있는 유산은 바로 이 것뿐
아들아, 겨울을 건너서 수선화가 피는 법이란다
설령 운명일지라도 시지푸스가 되어 밀어올려라
아픔으로 빚어낸 보석이 가장 빛난다
한 개의 희망이 천 개의 절망을 이긴다
아, 간절한 마음 하나가 세상을 품는다
이렇게 밀리지 않는 목숨을 서원이라고 부른다
혼자서는 무덤이다
살아있는 누구나를 위해
하찮은 것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까?
자각과 자유를 빼앗긴 불모지에
아들아, 서원의 나무 한 그루 심어 오너라
2003. 1. 24 아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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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즈마녀 사는 금천땅 곳곳에 스폰지처럼 눈이 쌓였습니다
눈이란 내릴 때는 마법 같고
질척이며 녹을 때는 실패한 마법처럼 속수무책이구요
오늘 "우리들의 시"
"서원" 은 오즈메일링에 등록하신
녹차한잔님 께서 보내 주신 시 입니다
"부산에서 시를 가르치며 시를 쓰신다는 분"의 성함을 몰라서
지은이에는 녹차한잔님께서 알려 주신대로 그렇게만 적었습니다
아침에 인도로 떠나는 아들에게 써 주셨다는 글입니다
멋진 아들, 멋진 아부지.
그리고 나누어 읽기를 생각해 내신 멋진 녹차한잔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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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