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이정록

집터를 닦느라 파헤쳐진 푸른 대나무, 마디를 세어 보니 서른
여덟째 마디부터 가지가 뻗어 있다. 내 나이와 같다. 다른 대나무
를 세어 보니 서른 일곱째 마디부터다. 뿌리 사이 흙을 털어 내고
다시 세어 보니 서른 여덟째가 맞다. 무성한 이파리로 하늘을 쓸
어 볼까? 생각다가, 단소나 대금은 뿌리 근처로 만들지. 해금도
굵은 밑동으로 울림통을 삼지. 그렇다면 이제, 절창은 끝났구나.
마디가 마디를 부르는 서른 여덟째 칸을 쓰다듬는다. 어려서부터
삼팔은 느낌이 안 좋았지. 삼팔선이라는 말도, 삼팔 따라지라는
어른들의 말도, 무거웠지. 불안이 가지를 뻗게 하는 것. 하늘을
덮는 대숲도 불안이 만들었나? 제 몸을 쪼개어 푸른 구름을 드리
우는 대나무 숲. 그렇다면, 그래 그렇다면. 하늘 끝부터 거꾸로
세는 거다. 그럼 몇째 마디부터 잔가지 없어지고 단단한 천년의
소리를 품게 되나? 지진도 견뎌내는 뿌리의 연대를 갖게 되나?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 할 서른 여덟 살이 되었다. 나는 이제 땅
으로 내려간다. 취구와 청공을 뿌리 근처에 두리라. 그래도 칠성
공은 저 멀리 보름달로 내다 걸어야겠지.

*취구. 청공. 칠성공 : 대금이라는 국악기에 있는 구멍들.

높고 아름다운 우리 마을

장미예 - 안동 대성국교 6년

우리 마을 바드레는 아주 높은 곳에 있다. 우리 마을에
서 차를 타러 가자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아랫마
까지 가려면 일곱 시도 덜 되어서 가야 한다.
학교에서 마을까지는 2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우리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우리 마을이 보인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대략은 보인다.
우리 마을 집 수는 35집이다. 갯골을 빼놓고. 갯골까지
치면 38집이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29명이
다. 중학생은 모두 11명이고(멀리 나간 사람은 치지 않
음) 고등학생은 안동 있는 언니 1명뿐이다. 대학생은 언
니, 오빠 둘밖에 가지다. 대학생 언니, 오빠 둘은 형제다.
농사는 논농사 짓는 사람은 한 집인가 두 집인가 있고
모두 밭농사다. 논농사 짓는 사람은 헛했다고 한다. 밭을
한 사람은 처음에는 고추가 잘되었지만 지금은 잘 안 되
었다고 한다. 내 생각은 잘된 것 같은데 어른들은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마을은 못사는 사람은 많지만 먹는
것은 걱정 없다.
우리 마을 습관은 단옷날에 그네뛰기를 꼭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을에 자랑할 것은 못 되지만 만지 소나무가 있
다. 이 소나무는 가위로 둥글게 끊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 나무는 가지가 백 개도 넘게 뻗어 있다.
우리 마을에 전설이라고 할 수 없지만, 어느 처녀가 뱅
밑 산꼭대기에서 뭐 어떻게 발을 잘못 디뎌서 그 높은 산
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고부터 뱅 밑에서 물이 안 나
온다고 한다. 그 전에는 물이 잘 나왔는데, 그 처녀가 널쪄
죽고부터 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저 높고 아름다운 바드레, 나는 아랫마 사는 사람은 땅
에 살고 우리는 하느님같이 느껴진다.
불쌍한 갯골! 갯골은 아직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캄캄한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고 밥 먹고 하는 갯골 사람
들이 난 너무나 가엾게 생각된다. 우리 바드레 사람이 외
롭게 사는 갯골을 좀 도와 주었으면 좋겠다.

*가지다 : 그것뿐이다.
만지 소나무 : 소나무의 한 종류.
가지가 사방으로 많이 뻗어나 보기가 좋음,
널쪄 : 떨어져

남편은 옆에서 전두환 어쩌고 ... 라는 연속극을 보고 있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집단홧병에 걸려 죽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지 않나요. 뭐 한때 이판사판 이라는 이름의 포장마차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국민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고치랬대나 어쨌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