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치타자리

이혜영

2999년 나는 마지막 한 마리 치타였다 오랜 전쟁에 지친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지상의 제일 높은 곳에다 나의 영토를 마련
해주고 쓸쓸한 눈으로 올려다보곤 했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몽
상가였던 나는 눈잣나무 아래 누워 가는 잎새를 스치는 바람소리
나 도로로롱 흘러가는 구름 음악이나 들으며 가끔 그 소년을 생
각하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그 환상 속 첫 기억은 B.C.1019년 거
긴 모래바람 부는 바위산 기슭이었다 포도주와 꿀벌 쓰디쓴 몰약
의 시절 소년은 양떼를 몰고 계곡으로 내려가곤 했다 양들은 종
일토록 소란한 소리로 매애매애 노래를 불러댔지만 나는 저 멍청
한 양들의 합창에는 관심이 없었다 바위 틈에 몸을 숨기고 계곡
쪽에서 올라오는 우슬초* 냄새를 맡는 것이 좋았다 건너편 성벽
에 핏빛 노을 타는 어스름녘이면 소년은 양들 우리에 몰아넣고
악기를 타곤 했다 어둠 속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하늘의 초록별마
저 총총 내려와 듣던 노래들....3033년 여름 나의 몽상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조금 더 높은 이곳에 왔을 때 소년은 내 얼굴에 악기
를 걸어 주었다 그날 이후 지상에는 웅얼웅얼 고개를 주억이며
뭔가 생각에 잠기는 이들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어느날 문득 하
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내 얼굴 한가운데 선명하게 새겨진 초록별
무리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이들

*돌밭에서 자라는 박하향내의 흰 꽃(출애굽기)

우리 집 농사

정은영 - 경북 성주 대서국교 6년

우리 집에서는 우리 집 바로 앞에 하우스를 짓기 때문에
편하다.
우리 집 식구는 다섯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끼리 일을 다
할 수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불러서 일을 해야 한다. 그
러나 올해는 다른 사람 없이 우리끼리 일을 잘 처리했다.
호박 모종에 접을 붙일 때도 우리 식구끼리 했다. 나는 옆
에서 호박 순을 따서 아버지 앞에 놓았다. 아버지께서는 잘
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호박 모종에 접을 붙이고 나서는 하
루가 가기 바쁘게 빨리 컸다.
또 참외 모종을 옮기기 위해서 논에 골을 타고 비닐을 씌
웠다. 그 다음에 참외 모종을 옮겼다. 참외 모종을 옮기는 것도
어머니와 아버지 단둘이서 일곱 마지기를 다 옮겼다. 논에
풀을 맬 때도 우리 식구끼리 맸다. 두 번째 맬 때는 풀이 너
무 많아 사람을 몇 사람 불러 맸다.
참외 모종을 옮기고 난 뒤에는 더 바쁘셔서 숟가락을 놓
자마자 논으로 가셔서 참외 모종을 돌보셨다.
그렇게 고되게 일한 보람이 있었는지, 참외를 딸 때는 기
분이 몹시 좋았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참외에 상처가
나지 않게 잘해서 서울에 보내었기 때문에 올해는 다른 사람
들보다 돈이 더 많이 내려왔다.
참, 내가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하는 일은 비닐 내리는
일, 거적을 덮는 일 등 여러가지가 있다. 나의 바로 밑의 동
생인 진욱이는 진일이를 보는 것이 일이다. 참외를 따는 날
은 학교에 갔다 일찍 와서 참외를 씻어 주곤 한다.
참외 농사가 끝나고 나서 너 마지기에는 벼를 심었는데.
올해 가뭄이 들어 가천 물을 끌어올려서 심었다. 지금은 벼
가 고개를 푹 숙이고. 이제 우리를 베라는 듯이 서 있다.
서 마지기에는 배추를 했는데, 배추 모종을 옮길 때도 우
리 가족끼리 다 했다. 이제 그 보람이 있어 알을 밴 배추가
많다.

성주땅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라 남편에게 언제 한번 같이 좀 가보자고 했더니 먼저 갔다 온 남편은 장날이라도 암껏도 볼게 없더라면서 가지 않으려 합니다. 이번에 몇달 들어앉아 있고 나서는 혼자 어딜 간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볼 것이 있고 없고는 내 맘이고 ...장날이면 노오란 참외들이 쏟아져 나와 있을텐데 왜 볼것이 없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