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풍경 중독자

김혜순

풍경이 나를 거닌다
내가 밤의 풍경을 쓰다듬는다
이렇게 비 오는 오늘 밤, 풍경이 침대 위에서 돌아눕는다
풍경은 왜 거기 있지 않고 여기 있는가
소름이 돋아 우둘투둘한 풍경
두 팔로 껴안아도 여전히 온몸 떨리는 풍경
왜 풍경은 몸 속으로 들어와 고통이 되고 싶은 걸까요?
비 쏟아져 들어가는 지하도를 옆구리쯤에 품은 풍경
그 지하도 밖으로 나오자
녹슨 철골들이 산발한 채 붉은 물을 뚝뚝 흘리는
그 아래 입을 쓱 닦은 깨진 유리병이
피를 뚝뚝 흘리는 밤의 풍경
그곳, 우산도 없이 내가 서 있는 밤의 풍경
내가 배게에 얼굴을 파묻자
멀리 안 보이는 관악산이 비켜서고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풍경에게도 깊이가 있나 봐요
나날이 풍경이 깊어져요 명치 끝을 파고들어요
호흡이 바뀔 때마다 풍경은 바뀌고
안개가 피어오르고 내 방이 녹아서 강물에 떠내려가요
왜 고통이 몸 밖으로 나가면
한낱 고물집하장이 되어버리는 걸까요?
안에서 밖으로 내뿜어지는 풍경 속
나는 어째서 녹물을 칙칙 뱉는 짓다 만 우정병원 콘크리트에
기대고 서 있는지 비는 철썩철썩 내 뺨을 갈기고 있는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바뀌어버리는 예민한 풍경의 살갗
그래, 이제 그만 풍경의 문을 닫아 걸자
행복했어요 멀리서 바라보기엔
그러나 가까이 다가서면 참혹했어요
비 오는 밤의 풍경이 내 두 팔 안에서
나 없이도 울고, 나 없이도 헐떡거린다
비 오는 밤, 풍경의 한복판
온몸의 피가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그곳
벙어리 여자처럼 큰 소리로 울며 내가 지나갔지요
먹구름이 몇 가닥 얼굴 위로 흘러내려요
언제나 한 장의 표면밖에 가진 것이 없는
그런데, 이 풍경의 출구는 어디예요?

우리 마을 아주머니 할머니들

김선미 - 충남 대천여중 3년

집에 오는 길에 장에 갔다 오시는 동네 아주머니와 할
머니를 만났다. 머리에는 한 광주리씩 이고 손에도, 어떻
게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가시는지 무척 힘드실 것 같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허리가 기역자로 굽으신 할머니께서
도 손에는 한 보퉁이 들고 가신다.
"뭘 그렇게 많이 들고 가셔요?"하고 여쭈니 할머니 아
주머니께선 "애들 먹을 거랑 바슴 때 쓸 반찬거리다."하
고 말씀하신다.
무거운 중에도 애들 먹을 것은 꼭 사 가신다. 우리 어머
니도 그러신다. 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병원에 가면 뭐든지
먹이려고 하신다. 부모님의 마음은 하나같으신 것 같다.
할머니께 "할머니는 무거운 것 들고 힘드실 텐데 왜 걸
어가셔요? 차 타고 가시지요."라고 여쭈었다. "뭐 오래 걸
린다고 버스 타고 다니냐? 돈 아깝게......"
어떤 아주머니는 짐 하나 없이 10분도 안 되는 거리를
차 타고 다니는데 우리 동네 할머니는 한 시간도 더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니신다. 할머니께서 힘이 안 드실 리 없다.
나도 집에 가면 다리가 아프고 온몸이 피곤한데 60이 넘
으신 할머니께선 오죽하실까?
그러면 왜 그러실까? 내 생각으로는 돈 때문이기도 하
지만 차를 타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셔서인 것 같다. 언젠
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할머니께서 버스를 타려고 하
니 차장 아저씨가 못 타게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버스
안이 비좁기는 했어도 할머니 한 분이 탈 자리는 있었껀
만 "늙은이가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녀?"하며 태워 주지
않았다. 이런 일이 많지는 않겠지만 차장 아저씨들이 늙
은 분들에게 친절히 해드리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어떤 아주머니들은 장에 갈 때 있는 멋, 없는 멋 다 내
고 가는데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은 고추, 콩, 쌀, 무, 배추
등을 머리에 이고 옷도 보통 때처럼 입으신 채 장에 가신
다. 이것들을 팔아서 애들 먹을 것 사고 반찬거리 사고 남
으면 급할 때 쓴다. 그 무거운 것을 이고 어떻게 한 시간
거리를 왔다갔다하시는지......
내일은 8일, 장날이다. 또 무엇을 이고 가실까? 배추
무, 고구마, 쌀......

*바슴 : 바심. 풋바심. 채 익기 전의 벼나 보리를 먼저 베어
떨거나 훑는 일.

동심
미소처럼

동심.
뭐가 생각나세요?
저는 동심..이라구 하면 날개가 생각나네요.
하얗고.. 깨끗해서.. 투명하기까지한.. 아름다운 날개.
아니.. 커다랗진 않아요.
자신에게 맞는 크기일 뿐이죠.
그 투명함에는요,
해맑은 미소가 묻어있구요,
솔직할 수 있는 순수함이 묻어있구요,
또 그 투명함에는요,
세상 모든것들을 친구로 만들수 있는 능력까지
살짝 포개어져 있답니다.
아이들이 소꿉놀이하는 장면을 바라본 적 있으세요?
"나는 아빠구.. 너는 엄마니까, 넌 나보구 여보라구 불러."
한번 바라보세요... 아니, 지켜보세요.
눈으로만 보지 말구요, 마음으로 지켜보세요.
그러면.. 아마도 어느 틈에 하얗고 깨끗해서 투명하기까지한
날개가 당신의 등에서 하얗게 피어 있을 거예요.
동심의 맑은 날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