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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려 줄 몸 한 채 |
| 김선우 |
속이 꽉 찬 배추가 본디 속부터
단단하게 옹이지며 자라는 줄 알았는데
겉잎 속잎이랄 것 없이
저 벌어지고 싶은 마음대로 벌어져 자라다가
그중 땅에 가까운 잎 몇 장이 스스로 겉잎 되어
나비에게도 몸을 주고 벌레에게도 몸을 주고
즐거이 자기 몸을 빌려주는 사이
결구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라
알불을 달듯 속이 차오는 거라
마음이 이미 길 떠나 있어
몸도 곧 길 위에 있게 될 늦은 계절에
채마밭 조금 빌려 무심코 배추 모종 심어본 후에
알게 된 것이다
빌려줄 몸 없이는 저녁이 없다는 걸
내 몸으로 짓는 공양간 없이는
등불 하나 오지 않는다는 걸
처음 자리에 길은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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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리 |
| 박정숙 - 상주 청리국교 3년 |
서리가 온 것이다.
과수원 사과밭에
서리가 빼죽빼죽하다.
우리 이웃집 사람이 어른한테
과수원에 꽃 폈다고
하십니다.
과수원에는 줄로
배나무하고
사과나무가 있으니
참말 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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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쁜년
쓴 사람 : 설도 (누구신지 어떤분인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언젠가 기회 되면 한번 만나 보고 싶네요)
고기 두어근값 견주느라
나쁜년
차 기름값 계산 하느라
미루고 미루던 친정행
일요일 늦잠 미련에
엉덩이 뒤로 빼고 투덜되는
나쁜년
칠순 부모
반쯤 꺽인 허리 세우고
마당나와 삽짝에서 함박웃음 짓는다
애지중지 키운 막내딸년
서방, 새끼만 바라보고
서방부모만 부모라며
매정하게 돌아 앉아
전화 일곱통 받고서야 찿아간
나쁜년
청송 부남에서 비단옷 입고 시집와
헤진 삼베 적삼입고
고추밭에 머리 묻고 허리 반쪽 내어주고
얻은 이름 '부촌댁'
차려진 밥상 안고 지새끼 좋아하는 반찬 없어 투덜대는
나쁜년
서방, 새끼 끼고 자고 일어나자마자
애들 숙제 못 했다며 서두른다
지집은 본시 여긴 것을
하룻밤 짧다며 눈물 찍어 내는 노모
'니 줄 라꼬 농약 쬐매 준기다'며
쌀 한 가마, 팥 한 되, 늙은 호박, 배추, 곶감......
차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쌀이 아니라 뙤악볕에 흘린 땀 방울인 것을
팥 아니라 막내 딸년 걱정에 피멍든 가슴인 것을
배추 아니라 노모도 젊은시절 있어 그리움인 것을
곶감 아니라 자식위한 기도가 분꽃으로 피운 것을
언제 오마 약속 없이 휑 하니 떠나는
나쁜년, 나쁜년.....
- 지난 일요일 친정을 다녀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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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