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시 한편
철거되는 생애
한정원            

벚꽃, 온전히 날아서 깨진 유리창을 넘나들고 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
으로 출입문을 눌러보면 푹 패이거나 잘려나간다 불꺼진 심지에서 연기
가 피어오르다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오래 견디려고 한다 내가 떠나왔던
집을 또 누군가가 버리고 휘어진 철골만 남겨 놓았다
부동산 간판 아래 한 세대가 가고있는 중이다 팽팽한 시간과 줄을 당기
다가 놓아버리는 것은 언제나 사람들 뿐 해킹 당한 주소들이 거미줄에
매달려 늙은 고양이를 따라다닌다 기침 소리 들리지 않고 목련꽃잎이 요
오드 액처럼 말라붙은 길 위에 급히 버리고 간 식탁이 배를 보이고 누워
있다
아기를 낳았고, 찬밥을 먹었고, 책을 읽었고, 화분을 들여놓았고, 비가 올
때만 물 흐르는 소리 들리는 곳 햇살 아래서만 눈뜨는 곳을 어둠이 받아
주고 있다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은 낯선 벌판 35번지, 햇볕이 머문
자리에는 사람이 살다간 흔적이 있다


안 간지럽나?
최명화 - 부산 가락초등 4학년            

저녁에 아빠 발을 씻어 주었다. 아빠가 안 웃길래 내가 발
을 간질렀다.
"안 간지럽나?"
"뭐가 간지럽노. 하나도 안 간지럽구마는."
"아빠, 아빠 발에 핏줄이 다 보이네."
"늙어서 그렇지."
"어구, 늙기는 만다 늙노?"
"니도 크면 늙는다."
"발꾸랑내가 와 이래 많이 나노?"
"일해서 그렇지."
"일하면 발꾸랑내 나나?"
"그래. 아이고 우리 딸, 우리 명화가 제일 좋다."
수건으로 발을 닦기 시작했다.
"아빠."
"왜?"
"심심하니까 불러 봤다."

만다 : 뭐 한다고.

1994년 5월 9일


의  
맑은 햇살 한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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