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시 한편
자동응답기
김 윤            

지난 겨울 낙산사 원통보전 마루 끝에 앉아. 삼재기도
하라고 나를 붙잡던 그 보살, 내 속 몇 십리 다 태워버리
라고, 바람 든 허파 속 몇 굽이 삼재에 팔난을 친 친 감아
소신공양하라고 붙들던 그 맘, 이 봄 절간 한 채 다 태우
고서야 알았네. 원통보전은 누더기만 걸치고 아직도 불
속을 걸어서 걸어서 가고 있는데, 눈 먼 종소리가 더듬더
듬 아침해를 들어 올리네. 삼재 든 내 속 텅 비워 종루에
걸어두라고, 소짓장으로 타버린 기도접수책에 눈썹 가느
다란 보살 지금도 내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쓰고 있나. 어
깨에 찐득찐득 엉겨붙던 진땀난 종소리가 흐린 날 하루
징징 내 마루를 휘집기도 해, 불에 덴 소리 한 올이 내 주
파수를 따라와 자동응답기 안에 또아리를 틑 거야. 불 켜
진 재생 버튼 속 누군가 쪼그리고 앉아 붉은 쇳물을 헤치
며 갇혔던 새들을 날려보내지. 다 놓아 버리라고 내 쓸개
부황든 어디 탁탁 성냥 긋는 소리 나기도 해. 낡은 응답기
속 아직도 나무들 활활 타오르고 다친 종소리는 맨발로
걸어다니지. 내 밥상 위에 자동응답기


옹해꽃
조병년 - 상주 청리국교 4년            

옹해나무 젙에 가면
맛있는 고기 찌지는 맛있는 꽃.
눈이 내리는 듯이 새하얀 꽃.
얼굴이 하얗고 가운데 뾰족한 옹해.
어제도 나무 밑에서 맛있는 냄새에
그만 잠이 들었다.

1964. 4.20

*옹해꽃 : 오얏꽃. 자두꽃.
옹해나무 : 오얏나무. 자두나무.
젙 : 곁
찌지는 : 지지는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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