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의 시 한편
껍질의 본능
길상호            

사과 껍질을, 배의 껍질을 벗기면서
그들 삶의 나사를 풀어놓는 중이라고
나는 기계적인 생각을 돌린 적 있다
속과 겉의 경계를 예리한 칼로 갈라
껍질과 알맹이를 나누려던 적이 있다
그때마다 몇 점씩 달라붙던 과일의 살점들,
한참 후 쟁반 위 벗겨놓은 껍질을 보니
불어있는 살점을 중심에 두고
돌돌 자신을 말아가고 있다 알맹이였던
그녀의 빈 자리 끌어안고 잠든 사내처럼
버려지고도 제 본능을 감당하고 있다
이미 씨앗은 제 속을 떠났지만
과일 빛깔은 실갗에 선명하게 남았다고
그 빛깔 향기로 다 날릴 때까지
안간힘 다하고 있는 껍질들,
너무 쉽게 변색되어 갈라지던 마음을
저 껍질로 멍석말이해 놓고
흠씬 두드려 패고 나면 다시 싱싱해질까
말려진 껍질 속에 드러눕고 싶었다.


강재순 - 상주 청리국교 4년            

땀이 흘렀다.
아이들은 괭이와 호미로
땅을 쫏으며
땀을 많이 흘렸다.
아이들은 땀을 흘리며
땅을 막 쫏는다.
아이들 땀 비 오듯 내린다.
나한테도 땀이 비 오듯 한다.
나닝구가 배리서 등때기가 따거와서
저고리를 벗고
막 부쳤다.

*쫏으며 : 쪼며
나닝구 : 러닝셔츠
배리서 : 버려서, 땀에 젖어서
등때기 : 등. 등떼기. 등떠리.

1964년 5월 9일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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