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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의 밤 |
| 허수경 |
어느 날, 그 숲에는 작은 다람쥐들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잘못 보았
다고, 나에게 말하지 마세요, 정말 보았다고요. 정말, 그 폭풍 속에 다람
쥐들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고요, 마치 아주 오랫동안 하늘로
만 올라갔던 것처럼 그렇게 올라가고 있었어요, 보았어요, 내 눈으로, 눈
으로 본 게 다는 아니라고요, 그렇다면 눈이 아니라 무엇으로 보아야 하
나요, 그때 다람쥐들은 하늘로 마치 날개를 단 것처럼 제 꼬리와 머리를
양날개로 삼아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어요, 마치 하늘에 숲이 있
는 것처럼, 개암나무로만 이루어진 숲이 있는 것처럼, 그 숲을 찾아서 찾
아서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정말 나에게 말하지 마세요, 잘못
보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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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4 |
| 이상훈 |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이미 30년도 넘은 옛날의 일들이 아니던가. 하
지만 그 때도 피었던 꽃들이 지금도 피고 있다. 그 때는, 그렇게 나를 괴
롭혔던 꽃들이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따갑게 손을 찔러대
는 며느리밑씻개가 왜 그렇게 예뻐 보이는지. 보잘것없이 피어 그야말로
토끼들이 좋아했던 '토끼풀'도 추억처럼 살갑게 다가선다.
나도 모르게 어릴 때 만났던 작은 들꽃들에 빠져 들고 있는 나를 발견
하면서 이게 나이를 먹는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마당가 작은 화단에 골
무꽃도 심고, 용머리꽃, 원추리, 나리꽃, 백일홍, 봉숭아, 비비추, 매발
톱, 금낭화도 심었다. 제일 먼저 피는 꽃이 금낭화다. 이어서 매발톱이
몇 가지 색으로 피었다 지고, 용머리꽃, 골무꽃이 피면, 이어서 나리꽃,
원추리, 비비추가 오래 동안 화려하게 화단을 장식한다. 백일홍, 봉숭아
는 가장 흔하게 보아서 정감이 가는 꽃으로 가장 오래 피어 있다. 하나같
이 마음에 쏙 들어와 앉는 꽃들이다.
한 동안 예천을 지나 출퇴근을 하면서 온통 노랑 물감을 부어 놓은 듯
이 노란 꽃들을 참 오래 동안 만났다. 진한 노랑색인데다가 번식력이 대
단한 듯 가까운 산에까지 씨앗이 날아가 여기 저기 노랑 일색이다.
저게 도대체 무슨 꽃일까 궁금하여 꽃을 좋아하는 선생님께 전화를 했
더니 '금계국'이라고 했다. 코스모스에다 국화를 접붙여서 개량한 꽃이
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국화를 닮기도 했고, 코스모스를 닮은 듯도 하
다. '각시꽃'이라고도 한다는데, 아마 눈부시게 빛나는 색깔 때문일 것
이다. 북아메리카 남부가 원산지로 관상용으로 들여와 전국 각처에서 관
상초로 흔히 심는 귀화 식물이다.
그런데 예천에는 심어도 너무 많이 심었다. 용문을 가도 노랗고, 풍양
을 가도 노랗다. 지보도 노랗고, 유천도 노랗다. 나는 그 때 예천을 지날
때면 눈을 감고 싶었다.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만나면 심고 가꾼 노
력과 정성이 보여야 할텐데, 행정 관청의 짜증 섞인 행정편의주의만 보이
는 것 같아서 싫었다.
아마 상부 관청으로부터 꽃길을 가꾸라는 공문을 받았을 것이고, 어떻
게 하면 가장 오래 가는 꽃으로 뒤덮어서 오래 동안 지적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만 고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천은 '금계국'으
로 뒤덮여 있었다.
또 오래가는 꽃으로 주황색이 약간 섞인 짙은 노랑색을 띄고 있는 '루
드베키아'가 있다. (아마 두세 달은 넉넉히 피어 있는 것 같다.) 몇 년 전
에 지역마다 꽃길 조성을 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모양이고 역시 질기게 오
래 가는 꽃, '루드베키아'를 선택한 면지역이 많아서 지금도 가는 곳마다
많이 만나는 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루드베키아'라는 이름보다 '면서
기꽃'으로 더 많이 기억한다. 한번 심어 놓으면 몇 년이고 계속해서 줄기
차게 피는 꽃을 찾느라고 꽤나 고심들을 했을 면서기들의 안이함을 참으
로 적절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예천은 면에다 맡기지도 않고 아예 '금계국' 씨를 사서 각 면마다
내려 보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아마 '군수꽃' 정도가 되어야 할 것
같다. 한 동안은 예천을 지나오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금계국 꽃길을 보면서
꽃에다 온통 노랑 군복을 입혀 놓은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올해가 지
나면 제발 금계국을 더러더러 캐내고 그 자리에 순수한 우리 들꽃들이 각
자 다른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예쁘게 피었으면 좋겠다.
금낭화, 매발톱, 할미꽃, 백일홍, 원추리, 나리꽃, 비비추, 옥잠화, 골
무꽃, 용머리꽃, 기린초, 토끼풀, 마타리......
- 끝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상주 들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상주여자중학교 교사.
2003년 "작가정신" 제 4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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