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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 베는 날 |
| 천양희 |
풀 베다 본다
풀여치 눈이 검다
대낮에도 캄캄한 숲 탓이다
바람이 그걸 당겨 산끝까지 간다
우두커니 나는 풀밭에 서 있어 그때마다 발끝이 들려
마음이 풀포기 몇, 말아올린다. 날 살게 하는 건 썩어
거름된 풀잎들, 싹 내민 무명초들, 풀도 잘못 잡으면
손을 벤다고? 세상에는 베이는 일들이 너무 많다
멍멍해진 눈에 논물이 차오른다. 들판 한쪽을 오래
당겨본다. 실개천 하나 달려나오고 물떼새 왁자지껄
날아오른다. 오르고 또 올라도 하늘 밑이다
우두커니 나는 풀밭에 서 있어 그때마다 발끝이 들려
풀 베다 본다
한 뿌리 모두 여러 갈래다
같은 땅인데 길조차 여러 갈래
풀섶이 내 속에 들어앉는다
풀씨만한 한 생(生)이 꿈틀거린다
풀아 날 잡아라
내가 널 당겨 일어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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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3 |
| 이상훈 |
'안도현' 시인이 그렇게 애정을 가지고 노래한 '애기똥풀'은 가지를
꺾으면 손에 노랑물이 진하게 들면서 냄새도 고약하여 우리가 어릴 때 아
주 싫어했던 꽃이다. 여귀꽃이니, 며느리밥풀꽃이니 며느리밑씻개니 하
는 꽃들도 어릴 때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꽃들이 아니던가? 나중에
서야 그 이름과 그 이름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고는 얼마나 재미있게 웃었
는지 모른다.
눈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안도현 시인의 '개망초꽃'이다. 시인의 생각은 틀렸다. 개망초꽃은 눈
치코치 없이 아무데서나 막 핀다. 어릴 때 그 개망초 때문에 밭매기가 얼
마나 힘이 들었던가. 크면 뿌리가 질겨서 잘 뽑히지도 않는다. 며느리
밑씻개도 참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꽃이지만 소먹이를 할 때는 나를 많이
괴롭히던 꽃이다. 여뀌도 마찬가지로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꽃이다. 소
나 토끼가 잘 먹는 풀꽃이 아니었다.
농부의 아들이라는 현실적인 눈으로 이런 꽃들을 바라보면 정을 줄래야
정을 줄 수가 없는 꽃들이다. 아예 꽃이 피어서 그 씨앗이 여물기 전에
없애버려야 할 존재들이다. 꽃이 피고 씨앗이 여물어 내년에 그 만큼 더
많은 개망초나 며느리밑씻개가 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할 정도
였다.
- 계속
1955년 경북 문경 출생.
상주 들문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상주여자중학교 교사.
2003년 "작가정신" 제 4호에 실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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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