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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와의 여행 |
| 박상천 |
오늘 저는, 아버지와 처음으로 여행을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마흔이 되도록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저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갑니다.
父子간의 첫 여행에
그러나 당신은 말없이 누워만 계십니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고
오월의 나뭇잎들이 팔랑거리는
차창 밖, 휴게소 뜰에는
큰 형님과 세희가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다정한 父子의 모습입니다.
父子의 다정스런 모습이 갑자기 부럽습니다.
저도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며
어느 한적한 휴게소의 햇살 따뜻한 벤치에 앉아
팔랑거리는 오월의 나뭇잎을 바라보며
커피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고
손도 잡고 싶지만
당신은 이제 아무 말없이 누워만 계십니다.
그렇게 잘 부릅뜨시던 눈을, 가만 감고만 계십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눈빛이 무서워 보이지 않는 나이에 이르고 나니
이제,
어느 어스름 저녁 무렵
함께 집을 나서
고향 바닷가를 거닐다가
창 너머 바다가 보이는 조그만 주막에 들러
소주잔도 건넬 수 있을텐데
그것조차도 마다하시고 기어이 떠나버리신 아버지,
오늘 이 여행은
아버지와의 첫 여행이자 마지막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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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이삭 팰 때 3 |
| 권정생 |
하루 중에서 가장 쓸쓸한 시간은, 놀이 물드는 해질녘
이었습니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와 목덜미 속으로 들
어오면 오스스 한기가 들었습니다. 한 뼘쯤 남은 햇볕이
담자락 밑으로 내려오면, 아주머니는 그 담자락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그리고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노래
를 불렀습니다. '타박타박' '내 동무' 같은 구슬픈 노래였습
니다.
눈보라가 불어치는 추운 겨울밤엔 외양간 한녘을 빌려
들어 잤습니다. 외양간 주인은 아주머니를 위해 보릿짚
몇 단을 더 넣어 주었습니다. 엄마 소의 송아지가 있는
외양간에 잘 때면 꼭 그들과 한식구처럼 느껴졌습니다.
밤중에 문득 겨드랑이가 간지러워 눈을 떠보면 송아지가
주둥이를 내밀고 아주머니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어와 있
는 것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송아지 머리를 꼭 보듬
어 안아 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짐승이 되었으면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송아지
가 되어 마음껏 들판을 뛰어다녀 보고 싶었습니다. 아니
면 한 마리 새가 되어 공중에 훨훨 날아 보고 싶기도 했
습니다. 그러나 송아지도 새도 아무것도 될 수 없었습니다.
죽기 며칠 전, 윗마을 어느 할머니가 물어 보았습니다.
"탑아, 네 가장 큰 소원이 뭣인지 한가지만 얘기해 봐."
탑이 아주머니는 힘없이 할머니를 쳐다보며 분명히 대
답을 했습니다.
"보리밥이라도 한 번 실컷 먹어 보고 싶어요."
그 말을 남긴 다음, 닷새쯤 뒤에 아주머니는 죽은 것
입니다. 녹음이 짙어지는 산과 들은 활기차게 살아 움직
이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그날 아침따라 어깻죽지에 힘
이 없었습니다. 간신히 몇 집을 다녀 얻어 온 밥인데도
먹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밥바가지를 앞에 놓고 아주머니는 잠시 눈을 감고 가
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웬일인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
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토해 내어도, 역시 가슴은
시원하게 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숨결이 못 견디게
가빠 왔습니다.
한나절 동안 아주머니는 괴롬에 시달렸습니다. 팔을
내젓고 싶어도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렇게 마음으로만 허우적거리다가 끝내 숨을 거둬 버린
것입니다. 죽고 싶을 땐 그토록 어렵던 죽음이었는데 이
렇게 쉽게 죽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아주머니의 주검을 발견했을 땐, 옆으
로 비스듬히 잠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만 땅바닥에 한
쪽 얼굴을 붙이고 꼼짝하지 않고 눈을 감은 것이, 살아
서 잠든 것과 달랐습니다.
얻어다 놓은 바가지의 밥은 끝내 입에 대어 보지 못하
고 파리 떼가 날아와 윙윙거렸습니다.
마음씨 좋은 마을 청년 몇이서, 뒷산 양지볕에 아주머
니의 시체를 묻어 주었습니다. 아주머니의 품에서 나온
동전 몇 푼으로, 청년들은 산에서 내려와 막거리 한잔씩
받아 마셨습니다.
탑이 아주머니는 그 동전 몇 푼이 자기의 시체를 거둬
준 청년들에게 한잔의 술값이라도 되어 주었으면 싶은
마음에서 아껴 두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보리이삭은 패고, 뻐꾸기가 솔밭 숲에서 울고 있습니다.
타박머리를 나풀거리며 엄마 산소에 찾아가던 타박네
처럼, 아주머니도 지금쯤 뻐꾸기 소리가 높이높이 올라
가는 하늘 저쪽 그리운 어머니 품에 안겨 있겠지요.
- 끝입니다.
*권정생
1937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해방 직후 귀국.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당선.
"강아지똥. 바닷가 아이들. 점득이네.
짱구네 고추밭 소동. 몽실언니.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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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