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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음유(吟遊) |
| 하종오 |
해가 내려온다. 해가 내려온다.
산은 가만히 있다. 산은 가만히 있다.
장마중에 개인 어느 하루,
나는 상수리나무 아래서 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받는다.
어떤 나뭇잎은 가지 끝에 돋아나면서도 벌써 떨어져 잎맥
이 바스러진 다른 나뭇잎에게 돌아가고 싶어한다고 느껴진
다. 어떤 나무는 너무 커버린 저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다른
나무에게 잎을 건네주고 싶어도 이동할 수 없는 처지를 슬
퍼하여 잎을 떨어뜨린다고 느껴진다. 나무들이 일생 떨구는
잎사귀들과 잎사귀들이 일생 버리는 나무들 사이에 내가 있
어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나무들이 한 자리에만 뿌리내리는
사유가 궁금하다.
지금 노을이 내 방황을 교사(敎唆)한다.
지난날에 내가 만들었던 청춘의 사랑이 없다고, 지난날에
내가 찾아냈던 진실의 말이 없다고, 지난날에 날 친애하던
사람들의 가슴이 없다고.
정수리에 떨어져 얼굴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 몇몇 방울은
초록을 내 육신에 침투시킨다.
이 적막은 유서 깊은 적막이다.
산색에 물들어서 내가 한 그루 나무가 될 적이면 모든 수
목들이 성큼성큼 걸어서 제가 좋아하는 수목들에게로 가서
목근을 줘버리고 쓰러져도 나는 무방할까. 나는 언제나 우듬
지에 올라가 앉아 세상을 무겁게 내려다보고 싶었다. 아주
무겁게 침잠하는 것들을 오래 바라보다가, 나도 땅바닥에 잎
사귀처럼 핑그르르 떨어지고 싶었다. 그러곤 다리를 절고,
이마에 빨간 핏방울을 달고 나무의 병을 앓고 싶었다. 그런
데 난데없이 살이 근지럽다.
산바라기 하고 섰는 내 몸피에서 의문스럽게도 늙은 나뭇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해가 가라앉는다. 해가 가라앉는다.
산 너머로 산 너머로 산줄기가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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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빵 |
| 문미화 - 경북 부림국교 6년 |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데 구수한 냄새가 났다. 풀빵 냄새였다.
"씀씀씀......"
코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그러나 사 먹진 않았다. 학원에
서 집에 갈 때는 풀빵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서 코를 막고
막 뛰어갔으나 냄새를 맡고 말았다. 풀빵 파는 주위에는 풀
빵을 사 먹기 위해 아이들이 많았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우와, 디게 맛있겠다.'
집에 가니 동생 미경이가 풀빵 먹고 싶다고 보챘다. 난
엄마한테 돈 돌라 해 가지고 사 먹으라고 했다. 동생 영진
이한테 칼 있냐고 물으러 갈 때 미경이가 먹으면서 왔다.
미진이, 영진이도 먹었다.
"우와, 디게 맛있겠다. 내 한 입만 도, 응?"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나 순순히 좀 줄 아이가 아니었다.
"그거 디게 맛있겠다. 내 묵고 싶어 죽겠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먹고 싶은지를 알았는지 미진이가 조
금, 영진이가 조금 주었다. 미경이 걸 얻어먹지 못해 살살 꼬셨다.
"미경아, 좀 도. 내일 내가 좀 주께. 응?"
미경이가 세 명 중에서 제일 많이 주었다. 풀빵 냄새는
아이들을 끈다.
1987.10.16 금 맑음
꽃교실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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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