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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치기 소년 한스 |
| 김 안 |
불쌍한 한스, 우리 불쌍한 한스, 너의 양들은 어디에 있니? 너의
굵은 채찍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구나 한스, 너의 여자친구 릴리안
이 오늘은 낙엽처럼 빨간 팬티를 입었다고 소문이 났어 물론 개구
장이 빌의 짓이야 너무 상심해 하지 마 작년에 죽은 안나가 아직 너
를 기다리고 있잖아
한스, 그만 네 가면을 벗지 그러니 언덕 아래 동네 과부들이 네게
줄 하얗고 두터운 샌드위치를 준비해 놓았단다 한스, 그런데 너의
양들은 다 어디에 있니? 너는 대체 어디에다 채찍질을 하고 있는
거니? 이리 내려와 더 이상 잡아 먹힐 양들이 존재하지 않잖아 늑
대도 배가 고파 우물로 뛰어들고 있잖아
불쌍한 한스, 우리 불쌍한 한스, 릴리안은 소문에 죽임을 당했어
소문에 짓눌려 하혈을 하며 죽었어 낙엽처럼 땅을 향해 고요하게
존재의 비명을 내며 떨어져 내렸어 물론 개구장이 빌의 짓이야 한
스, 허공을 찟는 너의 채찍질을 이제는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단
다 허공은 피를 흘리지 않으니까 허공은 시선에 잡히지 않으니까
한스, 밤이 비와 뒤섞여 퍼지고 있어 언덕 아래 동네 과부들이 샌
드위치처럼 하얗게 두텁게 젖어들고 있어 개구장이 빌들이 개구장
이 빌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어 응원을 하는 개구장이 빌
들이 축구에는 콜드게임이 없다고 화를 내고 있어 개구장이 빌들이
언덕 아래 너를 기다리다 굶어죽은 과부들을 뜯어 먹고 있어
한스, 불쌍한 한스, 밤이 붉어지고 있어 릴리안과 안나가 무덤에
서 일어나 네가 잘게 쪼개놓은 허공을 아작아작 먹고 있어 사라진
허공에서 번쩍이는 건 한스, 너의 눈이니? 그렇게 바라보지 말아줘
우리의 불타는 입술들은 모두 더 때문이잖니 아, 한스 너의 채찍질
을 그만 멈춰줘 이제 피 흘릴 허공도 존재하지 않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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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밤 |
| 김용구 |
학교 오는 길 젙에
굴밤나무가 있다.
굴밤을 딸라고
아이들이 큰 독크로
굴밤나무 밑에를 때리니
오도독하며 니찐다.
비 오는 같이 소리도 아름답다.
주워 보니
끄티는 빼죽하다.
달걀같고
굴밤 껍지는 밥그럭 같다.
1963.9.28.
*굴밤 : 꿀밤,
젙 : 곁
독크 : 돌
니찐다 : 널찐다, 떨어진다
끄티 : 끄트머리, 끝
껍지 : 껍질, 여기서는 꿀밤 깍정이
밥그럭 :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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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