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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목을 지나며 |
| 최영철 |
고궁 후원을 거닐다 만난 오래된 향나무의 뒤틀린 몸이
만방으로 뻗치는 한민족의 기상이라 말하는 안내원 몰래
그 몸통 가슴께를 가만히 손으로 어루만졌습니다
한 번도 담 너머 나가보지 못한 왕조의 적적한 한나절이
왕도 아니고 왕비도 아닌 자태로 구부러져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가슴을 콩닥거리며 섰습니다
이것도 위엄이라면 위엄일까요
단정하게 가두어진 못물로 그 못물에 떠서 숨죽인 연잎으로
내내 가슴을 쓸어내리고 산 이것도 위엄이라면 위엄일까요
수백 년 향나무의 지그재그 용트림은
외간 범부의 등에 업혀 담이라도 넘고 싶어 주리가 틀린
주리가 틀려 비명을 내지르다 줄줄이 실려 나간
사대부의 말년이었습니다
어린 권좌 앞에 엎드린 고관대작 할아버지들이 우스워 주리가
틀린
주리가 틀려 마침내 권좌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한 말씀 하신
백면서생의 말년이었습니다
줄줄이 엮어 나간 왕조의 흥망성쇠를 한 자리에서 다 보아버려
이제 제 맘대로 죽을 수도 없게 된
죽어 제 맘대로 걸어 나갈 수도 없게 된
저 향나무의 말 못하는 위엄이
내 초라한 위엄인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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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동무 |
| 류정길 - 대구 상동 교회학교 4년 |
나에게는 불쌍한 동무가 있어요. 그 동무는 언제나 선
생님께 꾸중을 들어요. 왜냐구요? 그 동무는 공부를 못
할 뿐만 아니라 글자도 모르기 때문이어요, 그 동무는
집도 가난해서 다른 친구들은 그 동무를 싫어하고 놀아
주지도 않아요, 그래서 그 동무는 항상 외토리였어요.
참, 제가 그 동무 이름을 밝히지 않았군요. 그 동무 이
름은 '김주학'이에요. 성질이 순하고 마음이 착해서 나와
아주 친한 사이에요.
그러나 선생님은 내 동무를 싫어하고 꾸중을 많이 하
세요. 그것은 글자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내 동무가 가
장 곤란한 시간은 국어 시간이에요. 그래서 옆에 앉은
친구들이 작은 목소리로 읽어 주곤 하죠.
그러나 나는 주학이와 같이 집에 간 적은 한 번도 없
어요. 왜냐구요? 그것은 우리 선생님이 공부 못하는 사
람은 언제나 '나머지 공부'라 해서 남아서 50분 정도 공
부를 더 시키기 때문이지요.
며칠 전 우리 학교에서 소풍을 갔거든요. 나는 내 동
무가 오는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아 참 섭섭했습니다. 내
동무, 불쌍한 동무 위에 하느님의 사랑이 내리시기를 기
도드리겠습니다.
그만 써야 되겠어요. 시간이 다 된 것 같아서 이만 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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