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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 |
| 문태준 |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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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 |
| 김지원 - 경북 의성국교 5년 |
우리 집 앞에는 사람들을 태워 주는 버스가 매일 선
다. 내가 학교에 갈 때마다 버스를 타기 위한 사람들이
죽 서 있다. 우리 집 앞길은 자갈길이어서 차가 지나다
니면 먼지가 난다.
버스가 오면 자기가 먼저 타려고 우우 모여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질서를 안 지키는 것이다.
그때마다 싸움이 벌어진다. 서로 먼저 타려고 애를 쓰
다가 무엇을 깨고 울고불고한다. 버스는 그런 아픔을 참
고 이날까지 무거운 짐과 사람들을 태워 주느라 고생이
많다.
나는 우리 집 앞에서 버스를 타보았다. 그런데 얼마나
복잡한지 말을 못한다. 안내양 언니가 서 있을 자리도
없다.
"아이고 엉덩이야."
"어. 내 신발 어디 갔지?"
"어머, 미안해요."
"응아, 응아."
"아이, 시끄러워."하는 말들이 소란을 피운다.
내릴 때도 서로 내리려 하고, 탈 때도 먼저 타려고 한
다. 나는 탈 때도 내릴 때고 맨 나중에 타고 내려야 한
다. 버스 정류장에 가도 그렇다. 서로 표를 끊으려 하고
자기가 먼저 타려고 한다.
버스는 우리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지만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버스도 필요 없게 된다.
버스는 갈 때도 올 때도 방귀를 붕붕 하고 뀐다. 그
냄새도 덩치만큼 지독하다.
그래도 나는 버스가 좋아. 버스도 나를 좋아하는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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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그 마지막 이야기
(부제 : 10년 후에)
조서희
형과 형수.
형수'님'이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손해 보는 느낌이다. 나와 6년이나 차이가 나니 그럴만도 하다. 나의 아내도 '형님'이라고 부르기 어색해 했고, 형수도 거북해 했지만 지금은 익숙해 졌다. 내가 형보다 일찍 결혼했고, 형수가 우리집에 온지도 5년이나 됐다. 형의 나이 38에 무역회사 과장이고 형의 적극적인 후원에 아직도 꿈을 향해 나아가는 형수는 방송계에 몸 담은지도 4년. 내년이나 내 후년 쯤이면 형수의 드라마가 텔레비전에 방영될 것이다. 아님 내 후년이라도......
벌써 2년이나 됐다. 우리 조카 은서가 태어난지도. 5살이나 된 우리 현성이는 너무 부잡스러워 예쁜 동생 은서를 괴롭히는 것이 취미이다. 은서가 태어나던 날 우리형은 정말로 정선불안이었다. 형수가 어려서 걱정이 심했던 것 같다. 옛날 연애시절부터 형수 아끼는 건 여전하다. 우리 어머니께서 큰아들 손주 보고싶다는 눈치를 받으면서도 형은 형수 일 때문에 아이는 미루기로 했었다. 은서는 형수가 원해서 몇 년 일찍 세상을 보았다. 바쁜 형수지만 은서를 내팽겨치지 않았고 엄마 사랑 듬뿍 받으며 키웠다. 아이는 모유를 먹어야 한다면서 1년간 재택근무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수가 방송국에서 짤리지 않은 건 임신 중에도 현장 근무를 마다하지 않아서였다. 형도 그땐 엄청났었다.
이런 행복이 쉽게 얻어진 거 아니었다. 이건 거짓말 많이 보태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물론 우리 부모님보다는 형수 쪽이 심했다. 열 살이나 많은 게다가 맏인 형에게 금지옥엽같은 딸을 줄 수는 없었단 거였다. 나도 이해한다. 우리 쪽에선 철없는 애랑 결혼해서 뭘 할거냐는 거였다. 어머니 말로는 형이 고생할 거란다. 그때 당시 형수는 학생이었다. 또 형 말로는 졸업후 일도 할거란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이 며느리가 해주는 밥 먹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인 만큼 반대하셨다. 모든 아버지가 그런 것일까? 우리 아버지께서는 지켜보고만 있었다. 결혼 후 형수 얘기 들어보니까 형이 몸만 오면 된다고 했고, 공부도 계속해도 된다고 했고, 내 일도 하게 해 주기로 했다고 아직 확정이 되지도 않은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께서 승낙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했단다. 중요한 건 형수가 형을 좋아한다는 거였다. 거의 어머니들끼리의 싸움이었고 형과 형수는 말리고 설득하느라 1년씩은 더 늙어버렸다. 나? 난 형 편이었다. 2년 동안, 형과 형수를 지켜본 결과 형수가 철없는 소녀가 아니란 걸 알았고 둘은 서로를 너무 아끼는 사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성대하지 않게 교회에서 예식을 치뤘다. 그렇다고 내 결혼식이 성대했던 건 절대로 아니다.
형수를 처음 본 날 현빈 선배랑 형과 산으로 놀러 갔을 때였다. 형수는 고 3이었다. 쾌활했고 건강해 보였다. 지금도 그대로다.
형수는 서진원, 형은 유진원. 은서가 엄마이름하고 아빠이름이 같아서 외우기 쉬겠다. 이름이 같은 인연으로 친해지게 되었단다. 둘의 만남은 다 내 덕이 아닌가 싶다. 형이 우리가게 아르바이트를 거절했다면 이 이야기를 쓸 일도 없었을 것이다.
10년 전 형이 안 듣던 노래를 들을 때 조짐이 보였다. 노래를 좋아서 들은 적이 없던 형이 어느 날 '엔야'테잎을 가지고 와서는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형수가 엔야 노래가 너무 좋다는 말에 무작정 들었단다. 그 뒤로도 가끔 테잎을 가져와 듣곤 했다. 모두 형수의 간접 추천작일 것이다. 아무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오빠 동생하고 지낼 때는 나도 귀여운 여동생 생기는 줄로만 알았지 형수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형수가 대입 준비중일 땐 잘 만나지도 않고 형도 형 일에 매달렸다. 그 결과 형수는 원했던 대학 신방과에 합격할 수 있었고, 형은 감원철에 감원을 면할 수 있었다.
형수가 대학 2학년 때 형은 형수를 빼앗길 뻔했다. 형수 후배가 형수를 열렬히 사랑했단다. 그 후배가 군에 갈 때 기다려 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었는데 1년 뒤에 군복입고 결혼식에 왔었다. 그 후배가 군에 가지만 않았어도 형수는 형수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형과 형수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었다. 이른바 짝사랑이다. 형은 그만큼 순수하고 착했다. 하지만 형수는 모르겠다. 왕년에 좋아했던 사람을 센다면 여기서 미국까지 정렬을 시킬 정도라며 농담 섞인 말을 하곤 했었다.
사랑한번 못해보고 짝사랑만 했다던 형수. 그 중에 형이 포함됐던 거고 마침 형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 오늘날 은서가 있다고 보겠다.
평생 같은 세대를 살수는 없지만 서로 서로를 아끼는 마음, 은서를 사랑하는 마음은 영원히 같을 것이다.
지금처럼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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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