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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방 |
| 정복여 |
내가 세들어 사는 이곳에 아주 오래된 연못 하나 있었다
계약서에는 없던 무수한 물방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자
사각의 방 모서리를 허물며 둥글게 안으로 흘러들었다
내 호흡의 울림으로 연못은 여러 개의 둥근 원을 그리기 시작
하였다
둥글게 흔들린 물방울들이 놀라 서로의 몸을 바라보면
그 빛에 잠을 깬 물개암나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수면 위에는 오래된 연잎이 몇몇 모여
아직 오지 않은 꽃을 기다린다고 말하였다
몸 기울여 연잎의 깊은 뿌리를 들여다보았을 때
그 곳에 나 이전의 어떤 빛이 나를 보고 있었다
흰 달의 그림자 같기도 한 그 빛은 내게
무슨 말을 하는 듯
못의 한가운데에 솟은 작은 산 하나 보여주었다
산은 연못보다 더 오래된 깊이를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사자처럼 생긴 바위는 연잎의 뿌리에 닿아
그 뿌리에 사는 빛의 그림자를 안고 있었다
나는 그 바위 아래서 잠이 들었다
내가 눕자 연못도 함께 누웠다
그리곤 보일 듯 말 듯한 바닥을 내게 주었다
그 이후 나는 날마다 내 열쇠 하나로
어떻게 이 연못을 잠궈두고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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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수 없는 달 |
| 서강숙 - 전북 임실 덕치국교 6년 |
9월 9일
둘째언니와 고모가 왔다. 고모는 오후에 오시고 언니는
아침때 왔다. 참 반가웠다. 고모는 호연이라는 일곱 살 먹
은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호연이가 꼭 가분수 같았다. 머
리를 이상하게 깎아 가지고 머리가 더 크게 보였다.
9월 13일
집이 텅텅 비어 버렸다.
고모, 호연이, 언니들, 삼촌
이렇게 다 가고 나니
누가 또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빠가 보고 싶다.
설날까지 기다릴 수 없다.
여름 방학에 왔다가
나도 보지 않고 가 버려
오빠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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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
하늘바다시인
1
오는 것이 가을의 청명한 하늘인데
여름의 땀들은 몸속에 들끓고 인내의 살육을 바치면서
계절의 시간을 망각하고 지구의 찰나와
태양에 대한 존경을 버릴 때
무너져 버리는 조물주의 이치들
변색해 버리는 산의 나무 이파리들과
피워나는 어긋된 열매들이 떨어지고
낙엽이 흔들거리는 바람에 얼굴을 씻는다.
2
강한 세월의 흐름을 깨치고
눈물짓는 하늘, 그 모습은 몸이 찢겨지는 고통
꺼져버린 여름의 끝자락을 뒤흔드는 고요
버릴 수 없는 만물, 하늘에 빛나는 탄생의 별들
차마 떨어지지 못한 물방울이 솟구치는 하늘은
알고 있겠지. 알고 있겠지
사라진 하나의 단단한 삶의 도리를, 시간의 고리를
끝까지 부인하는 생명만 남아 다가오는 새벽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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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