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燔祭1 - 이브의 허물

조윤희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합장한 앳된 모습의 비구니처
럼 미세한 떨림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눈에 잡힐 듯한 떨림은
달빛 속에서 노란 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 눈이 부셨습니다. 그 계집
애의 마당엔 잘 가꾸어진 화단이 있어 사시사철 온갖 꽃을 피워내
고 있었습니다. 그 계집애도 꽃과 함께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때로
는 그 계집애의 화단에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는 나비들의 날갯짓
같은 희미한 어떤 나른한 기쁨 같은 것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계집애의 화단에 피어 있는 꽃들은 일제히 낯을 붉히며
더욱 선명한 색채를 띠는 것을 보았습니다.

달맞이꽃이 지고 있었습니다. 아침이슬 머금은 나팔꽃이 피어나
는 시간에 이미 달맞이꽃은 지난 밤의 도취된 꿈을 꾸며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이렇게 짧은 생이라니요. 지난 밤의 달빛은 한갓
꿈 속에서 빛나던 보석이었다니요. 열세 살에 초경을 치른 계집애가
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여자의 화단이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일년생 꽃들의 그 여린 허리들이 꺾이고 온갖
색깔의 눈물들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위협이었습니
다. 서서히 그 여자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미이라가 된 달맞이꽃
이 하얗게 바래가고 있었습니다. 인공의 달이 떠 있었습니다.
그 여자 그렇게 바래가고 있었습니다. 열세 살에 초경을 치른 계
집애가 열일곱에 아기를 가집니다. 여자 나이 겨우 네 살바기인 셈
입니다. 네 살바기 여자가 아기를 갖다니요. 그 여자의 화단이 입덧
을 합니다. 이브의 뱀이 속삭입니다. "너희들의 꿈 속에서 나는 너
희들의 아기라고" 끝내 그 여자는 이브이기를 거부합니다. 그 여자
자신의 허물을 너무 일찍 벗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허물이
징그러워 눈을 감습니다.

燔祭 : 번제

개

이근애 - 경북 의성 비봉국교 3년

어른들이
우리 집 개를
잡으러 왔습니다.

나는 오빠와 같이 울었습니다.
나는 개가 너무 불쌍했습니다.

어른들이 개를
칼로 찔렀습니다.
나는 방에서
엉엉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개 발을 주셨습니다.
나는 오빠와 함께 개 발을
묻어 주었습니다.

나는 오빠와, 십자가를 해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개를 하늘 나라에 가게
해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야! 이넘아~
안효선

창밖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없었구 나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없었다. 인간은 저렇게 많은데 나와 상대하지 않는 그 무언간 절대 물체라고 취급하지 못한다. 오늘도 쓸쓸이 창문을 닫아야 했다.
날도 구진데 학교를 가야한다. 이처럼 인생에서 하기 싫은걸 느낀건 요번이 첨이다." 주하중학교 1학년 13반... 한성호? " 비도 오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형이 날 붙들어 학생증을 쳐 꺼냈다. 난 우산을 쥐어 잡고 눈을 살며시 감았다. " 야! 이쐐끼... 야! 우산 뺏어갈까봐 그러냐? 왜 지랄이야? " 나는 순간 손에 힘을 뺐다. " 워... 원하는게 머... 머에외여? " 나는 고꾸라 질 정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그 형은 날라리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날라리 형인데 소문이 자자하다. 모두 그 형을 일진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더욱 초조한 심장 박동을 했다.
" 이 쌔끼! 너 쪼다냐? 병신... " 학교를 가야하는데 자꾸 날 붙들어 나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 그 형 발 쪽으로 던지고 반대 방행으로 뛰어갔다. " 야! 저... 씨파..." 그 형은 참 목소리 하난 끝내줬다. 그러나 돈만 있으면 모든게 해결 되는 건가? 돈 몇 푼 줬다고 따라오질 않다니... 세상이 얼마나 비열하고 추잡한지 원망 스럽다.
학교 교문은 무심히도 꽉 잠겨 있었다. 교문을 마구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선도 조차 없다면 많이 늦은 건데 사뭇 걱정이 눈앞을 가리고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시간 정도를 교문 앞에서 졸고 문을 넘었다.
교실 앞엔 갔지만 들어 갈 수 없었다. 내 성격 상 문제가 있는걸까? 너무도 소심해서... 등교하다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없다. 앞문에 얼정 되고 서있는걸 담임이 발견했다. "들어와!! 하여간... 한성호!! 언능... " 내 귀에 반가운 소리 였다. 나는 살포시 들어가 내 자리에 앉았다. 이런! 들어가자 마자 종이 울렸다. " 한성호! 상당실로 와줄래? " "..."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자 난 너무나 얼떨했다. 선생님의 뒷 모습만 노려보구 뒤를 따라갔다.

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