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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
| 최승헌 |
양수리 부근에서 마당극 “밥”을 보고 나와 시퍼런 물빛이 방안까지 따라 들어온 식당에서 밥을 먹던 목구멍에 밥이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세상만물이 돌고 돌아 서로의 밥이 되고 똥이 된다던 아까 보았던 그 밥이 걸려 자꾸 나를 붙들고 있다 밥값도 제대로 못하고 살아온 내게 화풀이라도 하듯 이 한낮에 억센 힘으로 내 목을 죄여와 도저히 밥을 삼키지 못하고 있다 밥을 먹을 때면 밥 속에 신비한 묘약이 숨어 있는지 자주 마술을 부린다 밥으로 길들여 놓은 몸뚱어리 구석 어딘 가에 잠복해 있다가 언제라도 튀어나와 내 목을 비틀 것 같다 밥 속에 잠시 길 떠났던 전생이 보이고 유효기간이 다된 세상이 보인다 밥의 힘으로 출세를 하고 밥의 힘으로 사기를 치고 밥의 힘으로 사랑을 하고 밥의 힘으로 이별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 밖으로 사라진다 퉤퉤, 침 발라가며 구겨진 돈을 몇 번씩이나 세어보던 새벽시장 아낙네의 거친 손 같은 세상에서 밥은 더 이상 꿈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다 그저 부실한 몸 하나 지탱시켜주고 굳은살처럼 단단한 삶을 챙겨 줄뿐이다 둘러보면 이 세상, 돌지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밥이 똥으로 돌아가서 세상 먹거리를 만들고 다시 똥으로 돌아가듯.
* 어느날 양수리에서 공연했던 마당극 "밥"을 보고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 시는 공연을 보고나와 늦은 점심을 먹으며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던 영감들을 시로 표현한 글이다.
이 세상 일체 만물이 돌고 돌아가듯 우리의 삶 또한 결국은 回歸의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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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 |
| 박근옥 - 상주 청리국교 4년 |
돌 하나를 주워 가지고
보니까 비죽비죽 튀어났다.
땅에 있는 돌은
수만 개가 된다.
돌은 우스운 게 다 있다.
196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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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물처럼
손정호
그저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아래만 보고 살 일이다.
그저 물처럼
없는 듯하게,
그러나 고여 있지는 말고
흐를 일이다.
그저 물처럼
맑고 깨끗하게,
그러나 때로 흙탕물도 받아들이며
흐르다보며 깨끗해 질 일이다.
그저 물처럼
넉넉하게,
스밀데만 있으면
아무데나 스미고
넘칠 때만 흐를 일이다.
그저 물처럼
색깔없이,
그래도 물빛이라고 말해줌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 일이다.
그저 물처럼
촉촉하게,
그러나 질퍽하지는 말고
물기 머금고 살 일이다.
그저 물처럼
시원하게,
맺힌 땀방울 씻어내리며,
갈증난 목줄기에 한사발
벌컥 벌컥 흘러내릴 일이다.
그저 물처럼
부드럽게,
퍼는 쪽박 모양 따라
담는 그릇 모양 따라 유연하게
고집 없이 살 일이다
그저 물처럼
투명하게,
숨김없이 속을 내 보여도
부끄럽지 않게 살 일이다.
그저 물처럼
풀도 물고기도 장구벌레도
다 안아들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갈 일이다
그저 물처럼
더 낮은 곳으로 흐르다
가장 낮아진 뒤에야
높은 곳에 있음을
알게될 일이다
그저 물처럼
여유롭게
남을 깨끗하게 하기위해
스스로는 더러워지며,
그러나 스스로가 더러워지는 법없이
말없이 흘를 일이다.
그저 물처럼
불평없이,
산에 들에 도심에서
내리는 대로
흐르는 대로 살 일이다
2000. 11월 겨울비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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