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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타는 나무 |
| 송수권 |
바람이 산굽이 하나를 타고 돌다가 머무를만한 定處는 어디란 말인
가. 약사암에서 운림동으로 넘어가는 그 고갯길에 칠백년 노거수는 또
어디 심을 곳이 마땅찮아 이곳 마루턱이 있더란 말인가. 산도 제일로 좋
은 고래 뱃속같은 무등산을 한바퀴 휘젓고 나오다 보면, 목도 출출하여
송풍정 보리밥 한 술에 막걸리 한 동이쯤은 으레 동이 나는 법이라,여
럿의 산행인들 틈에 묻어든 날은 이 평상의 그늘에 누워 나도 깜빡 한
졸음씩 졸다 보면 바람 탄 나무였다네. 수런수런 개어오는 잎새들 사이
눈 가리개의 그 하늘들,마치 횟칼로 저며낸 붕어치나 버들치의 살점들
같았네. 또 배를 뭉개고 가는 흰바구지 구름꽃과 노새와 짝새도 그 이
파리들 속에는 다 들어 있는 것인데, 白石이 그리워한 나타샤와 흰 당
나귀 울음소리도, 마가리로 떠나는 세간살이도 놋접시 깨지는 소리들로
다들 절로는 잘 들려오는 것이었네. 그보다는 우리 사는 날들 매양 서
러워 이 고갯마루턱에서 東北간 어디, 오십 리 밖 동북이나 화순골쯤 친
정집 마을 어머니와 시집살이 환장한 딸년이 유두나 백중날쯤 때 잡아
기별 통지하고 나와 설움을 바가지로 떠내는 그 반보기 나무는 아니었
을랑가 몰라, 그러면서 보아라, 시방 팔팔거리는 느티의 겉잎새들, 벌써
등이 휘어 저승갈 듯 빼랑빼랑 쇤 목소리로 울고, 그 겉잎새들의 우듬
지에 촘촘히 들어찬 속잎새들 눈 비비고 깨어나 靑磁水병이나 辰砂항
아리를 빚어 구름 탄 鶴을 불러들이는 그 능청스러운 웃음과 손모가지
들을! 그 속눈썹들을! 또 어느 가지에선 통꾼이 다 된 아이들이 닥나무
밭 닥종이를 한 장씩 떠내어 허튼가락 귀얄로 풀을 바르고 피워 낸 그
영원이란 이름의 포름한 난초꽃들을!
定處 정처
白石 백석
東北 동북
靑磁水 청자수
辰砂 진사
鶴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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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 |
| 김인향 - 문경 김룡국민학교 5년 |
아침에 언니가
옷을 내어 주었다.
꽃이 놓인 치마를
주었다.
치마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나는 막 울었다.
"그만 거지 같은 치마
입고 가라 왜"
하면서 입고 다니는
노랑 치마를 주었다.
1972년 6월 8일
아침에 언니가 꽃이 수놓인 고운 새 치마를 입고 가라고 내어 주어서
입어 보니 짤막한 것이 막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몸에
착 들어맞는 치마를 입다가 이런 것을 입으니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
럽기도 하다. 안 입는다고 하니 언니는 막 야단을 친다. 이 아이는 그만
울어 버린다.언니는 할 수 없이 늘 입고 다니던 노랑치마를 도로 내어
주었다, 물론 이 아이는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기쁨으로 그 노랑 치마
를 입고 마음놓고 학교에 갔겠지.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는 고운 옷이라도 제 몸에 맞지 않고 제 마
음에 싫은 것은 한사코 입지 않으려는 이 아이의 성격이 잘 나타나 있
다. 시도 이와 같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흉내내어 써서는 될 수
없고, 때가 묻고 몸에 착 들어맞는 자기의 생활과 말로 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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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경
쓴 사람 : 이아란
저녁놀이 암자에 진다.
옥수는 붉은 빛을 띄며
고운 가야금을 탄다.
행여 오시지 않는 님을 기다리는 눈물인가.
해는 머언 바다에 가라 앉고
달은 머언 산넘어에 띄어오는데
암자에는 어둠이 깔린다.
빈방에는 명상이 흐르고
고운 노래소리는
암자를 채운다.
뒷뜰의 벌레우는 소리는
서슬푸른 심회를 돋우고
푸르게 하늘에 떠있는 달은
가야금 소리를 빛낸다.
행여 오시지나 않으실까.
고요한 암자에 둘러 싸인 산과
걸터 내려 앉은 시내는 말이 없는데
밤 새워 흘린 고운 소리만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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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