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나무 사이를 걷다 |
| 박경원 |
그리고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틈들이 있는지
그 속을 걷다 보면 알게 된다
나무의 그림자들이 그 많은 나무 둥치에
어떤 부피로 깃드는지
나의 발소리가 어떤 나무 앞에서 뚝 끊어지고 싶은지
나무들 사이를 걸으면 나무들 틈에서 알게 된다
그러나 나무들의 기억은 너무나 멀다
그토록 많은 인생이 왜 제 속에 집을 세웠었고
욕망들의 흠집을 저희들 몸속에 남겼으며
결과 결을 맞추어 구석을 찾아내곤 기쁨과 흥분에 들떠
며칠이고 집을 비운 채 숲속, 그루턱으로 비워진
조금 더 허술해진
나무들 사이를 어떤 노래와 함께 헤맸는지 알지 못하니
나무들의 틈은
손때를 지우고 아무렇게나 떠난 이름들보다 멀다
그리고 나는 그 틈들이 이룩한 헐렁한 속으로 간다
|
|
|
 |
| 까만 새 |
| 정부교 - 안동 대곡분교 3년 |
까만 새가
낮에는
돌다물에 들어가 있다가
밤이 되면
아무도 모르게
남의 집 양식을
후배 먹고
배가 둥둥 하면
저 먼 산에 올라가
하늘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하늘로 올라가서
달과 별과 춤을 춘다.
1968년 12월 11일
* 돌다물 : 돌담불. 산이나 들에 모여 쌓인 돌무더기.
후배먹고 : 훔쳐 먹고
아주 어린 아기들 뿐 아니라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까만 색을 싫어
하고 까만 새를 꺼림칙스럽게 여기는데 산골 아이들은 오히려 까만
새를 동정하고 친근히 여긴다.
이 아이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어머니와 고된 밭농사를 지으면서 가난
하게 살았는데 학교도 결국 초등학교 3학년을 마치는 것으로 끝났다.
이 작품에는 가난 속에 살고 있는 지은이의 마음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낮에는 돌다물 속에 들어가 숨었다가 밤이 되면 아무도 모르게 남의 집
양식을 훔쳐 먹고 산다고 하는 까만 새의 모습은 산골에서 언제나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가는 지은이 자신의 모습이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
달과 별과 춤을 춘다는 것도 지은이의 마음 바닥에 깔려 있는 슬프고 아
름다운 세계다.
*
밑의 덧붙임 글은 이오덕선생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
|
|
제목 : 보내지 못한 엽서
쓴 사람 : 초롬이
여민 옷깃을 파고드는
소슬바람...
싸늘해진 가슴에 온기를
불어 넣듯이 두팔로 살짝
감싸안아 봅니다
반딧불이가 이 가을의 입구에서
점점 그빛을 감추어 가고
서쪽으로 반쯤 기울어진
초승달은 귀뚜라미 울음에
떠밀려 갑니다
코스모스가 수채화된 그림엽서에
그리운 마음을 몇자 적어보지만
이내 보낼수 없음에 가슴의
목마름을 느낍니다
떠난 님을 그리며
혹여 마음이라도 전해 질세라
예쁜 그림엽서에 예쁜 글씨로
몇자 적어 봅니다
당신과 함께한 지난 가을을
난 진정코 못잊는다고...
|
|
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