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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커스 - 능서 스님에게 |
| 최미순 |
하동 쌍계사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그의 소식을 연전 들었지만, 오
늘은 부평역에 나가 구례행 티켓을 끊고 돌아오는 길에 크로커스 화
분을 샀다. 봄빛을 베고 누운 즐비한 꽃들 속에서 벌들이 제일 많이
몰려든다는 보라색 맑은 향내음이 초발심 수행자의 안부를 궁금케 하
였다. 꽃을 비닐봉지에 넣지 않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브렌따노 상점
주인의 눈길도 방울토마토를 사느라 리어카 한켠에 올려놓은 꽃이 참
은은하네요. 시선들은 맑은 향기로움에 머물러 있곤 하였다. 마음을
매혹시키는 힘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폭력이 없는, 돈냄새가 없는, 눈
도장을 찍지 않는 그런 고요의 힘,
......그에게선 그런 향내음이 얼마나 배어 있을까. 맑은 향을 피워
올리는 저 꽃송이들을 보며 아득해지는 청명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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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 머들리기 |
| 이미자 - 경북 안동 대성국교 6년 |
어제 아침에 고추에 물을 줘서 뽑아 가지고 앞밭에 고추
머들리로 갔다. 고추가 거진 시들어 있었다.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화자는 놓고 어머니께서는 고
랑에 비닐 씌워 놨는 데 꽃삽으로 찔러 넣으셨다. 춘자는 수
레로 물을 주고 오빠는 물지게로 물 져다 나르고 나와 아버지
는 묻었다.
올해는 가뭄이 들어 다른 집도 그렇겠지만 우리 집 고추
는 참 많이 죽었다. 모두 열심히 해서 앞밭에 다 하고 담 너
머로 갔다. 담 너머는 앞밭에보다 더 많이 죽어 있었다. 우리
거 보고 다른 집 거 보니 우리 집 것이 더 많이 죽은 것 같았
다. 다른 집은 경운기로 물을 퍼서 호스로 고추에 물을 주지
만 우리 집은 그렇지 못하다. 물지게를 져서 줘야 하기 때문
에 여간 힘드는 게 아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올해 우
리 집은 고추 흉년이다 하시며 화자가 놓은 걸 꽃삽으로 찔
러 넣으셨다. 춘자는 물 주고 오빠는 물지게로 물 지고 나와
아버지는 묻었다.
한참에 시계를 보니 열두 시여서 가져온 고추를 다 심
고 집에 점심 먹으로 갔다. 점심 먹고 어머니 아버지는 쉬시
고 우리는 도랑에 머리 감으로 갔다. 머리 감고 집에 오니 어
머니께서 담 너머 하다 남은 거 하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보
고는 집에서 공부하고 놀아라 하면 좋겠다마는 하고 생각하
고 아무 말 안 하고 밭에 갔다.
아버지께서는 춘자보고 물 많이 주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하기 싫었지만 한참 하니 하기 싫지가 않았다. 남은 거 다 하
고 나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저녁 하로
가시고 아버지께서는 하다 남은 고추를 가지고 가시고 오빠
는 지게에 물지게 등 여러 가지를 지고 갔다. 우리는 집에 가
방 설거지 하고 놀았다.
* 머들리기 : 곡식이 죽은 자리에 추가해서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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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이맘때 쯤
채소 모종들을 밭에다 옮겨 심어야 하니 여간 바쁘지 않습니다
저도 작은 토마토 모종 하나 싹 틔워 놓고
아침저녁 바라보며 대견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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