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다산 정약용을 빌어

하재영

염천炎天이다. 성에 오르다 꽃뱀을 만났다. 강을 건너듯, 행길 우편에
서 좌측으로 구불구불 몸을 비틀며 지나가는 뱀. 이쪽과 저쪽의 거리는
늘 까마득하다. 뱀의 움직임처럼 산마루가, 산길이 꿈틀거린다. 그리운
사람과 만나기 위해서는 뼈마디 두둑거리는 아픔의 강을 건너야 한다. 살
아온 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길 건너 풀섶으로 몸을 숨기는 뱀의 꼬리.
굴절된 햇살 아래 동해 수평선이 머문다. 그 너머, 허물처럼 우리들 남긴
흔적들 걸려 있다. 간밤에 날린 고된 문장처럼

경운기 부리기

이헌희 - 충북 송계교회학교 3년

내가 아빠에게 오늘은 일찍 끝나고 거름을 실은 경운기를
몬다고 하고 2시에 집에 오니 마침 아빠가 거름을 싣고 계
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경운기를 타고 논에 가서 처음 부려
보았더니 앉는 데 있는 스프링을 갈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
다. 그래서 그날은 경운기를 계속 부렸다. 거름을 세 번 실
어 펴고, 집에 갈 때에는 내가 몰고 집에까지 가 보라고 아
빠가 말씀하셨다. 가는데 마늘을 놓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더욱 정신을 집중하여 몰았다. 내가 그렇게
몰고 있을 때 아빠는 경운기를 몰 때에는 긴장하지 말고 편
한 자세에서 몰으라고 하였다.

오즈홈에 글 올리는 여고생 구수경님이 "이화 여자대학교 백일장 수필 부문"에서 장원을 수상 했다는 소식 알려 드립니다. 기쁘고 어여뻐 오즈홈 초기화면에 현수막 걸어 두었습니다. 축하 합니다 구수경님!

추억의 보물상자를 팝니다
구수경

길을 가다가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 추억의 보물 상자를 만들어 드립니다.” 백 원, 이백 원짜리 불량식품, 장난감 로봇과 동그란 딱지가 가득 들어 있는 보물 상자를 말하는 것이었어요. 돈을 주고서 마치 오랜 세월을 지나온듯한 보물 상자와 그 안의 부속물들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그 물건들은 새것이지만 ‘추억이 깃든 것처럼’ 제작되는 것이지요.
요즘에는 정말로 많은 종류의 것들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럴 때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말은 “ 사랑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까?”입니다. 남녀가 이성으로서 서로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단지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런 사랑은 아마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을 겁니다. 최종적으로 돈을 주고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었는데 이것 역시 곰곰이 따져보니 어쩌면 돈을 주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겠습니다.
어쨌든 참 신기한 세상이 온 것 같습니다. 추억의 보물 상자를 살 수 있다는 것, 정말 신기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시간도 돈을 주고 살 수 있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시간이라고 한다기보다는, 시간 속에 존재할 법한 일들의 흔적을 돈을 주고 만들어 가질 수 있게 된 것일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굳이 그 흔적을 가지려고 돈을 지불하는 것일까요?
보물 상자는 참 매력적입니다. 우리가 돈을 주고서 그 흔적들을 사려고 하는 이유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기 때문이겠죠. 사실 내가 산 그 흔적들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 물건들과 한때를 보낸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런 물건을 사용해 본 적도 없는 경우가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도 매력적인 건 왜일까요?
아마도 누구나 가슴이 애틋해지고 코끝이 찡해질만한 추억거리를 갖고 싶어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보편적으로 구체화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추억의 보물 상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빛바랜 ‘물건’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도, ‘물건’이 빛바랜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추억’이나 ‘기억’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요. 이미 지나가버려서 지금에 와서 만들 수 없지만 너무나도 갖고 싶은 따뜻한 기억을 필요로 하는가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매 순간이 ‘추억’이고 ‘기억’일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바쁜 생활에 묻혀 그냥 떠나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상점에서 팔려나가는 ‘추억의 보물 상자’를 보면서 “ 아, 내게는 왜 저런 기억이 없는 걸까? 대충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제 와서 보니 흔적이 없네.”라고 후회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걸 사서 하나씩 눈여겨보며 추억을 떠올리면 될까.”라고 고민하지도 마세요. 꼭 눈에 보이는 흔적이 없더라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는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이 한 가득 들어있을 겁니다. 분명 누구에게나 말이죠.
그래도 보물 상자가 갖고 싶다면 그건 욕심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비우고, 오래 전에 찍었던 사진, 그 때는 왜 이리 멋없게 찍혔나 했던 그 사진을 한번 찾아보거나, 지금 숨 쉬고 있는 순간에 감사하며, 웃으며, 가슴 속에 잘 담아두면 될 것입니다.
추억을 돈 주고 만드는 시대. 실은 인생의 로맨스-좁은 의미로서 남녀의 로맨스가 아닌, 인생의 추억과 기억에 대한 로맨스 말이죠-를 지독하게도 원하는 슬픈 현대인들이 선택한 마지막 출구가 아닐는지요. 그런 로맨스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잠시 웃음 지을 수 있게 해주고 현재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출구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살아왔던 모든 시간,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보물 상자가 부러울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추억의 보물 상자가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것입니다.

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