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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 부처 |
| 이진영 |
43번 국도 변,
사람들이 새로 뽑은 소나타 승용차 앞에 모여
고사를 지내고 있다
집어集魚의 전조등 불빛 아래
아내의 오래 묵은 젖꼭지 같은 팥알로 앉힌 시루떡이 보이고
허리를 실타래로 묶은 명태와 부사 두엇 알도 보이고
그 단풍들 사이로 주불主佛처럼
돼지 머리가 앉아 있다
(세상에, 도루코 면도날로 누가 저렇게 깨끗이 삭발을 해주
었나, 아버지의 그 짙은 속눈썹 같은 머리털과 귓볼의 잔터
럭까지 잘도 삭발되어 있다)
사람들이 노란 양은 쟁반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단전호흡
을 하고 있는 주불主佛을 향해
오체투지를 한다
오체투지를 하는 동안
한 사람은 주불主佛옆에 복전福田을 놓는다
또 한 사람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웃으면서 주불主佛의 입에
배춧잎 같은 복전福田을 물려주기도 한다
(세상에, 인간의 잔밥과 구정물만 받아먹고 살았던 돼지가
언제부터 저렇게 인간의 큰절과 생명 같은 돈을 받아먹고
사는 독존獨尊이 되었나)
까짓껏, 탐욕과 탐식의 몸통을 깨끗이 잘라내 버리고 삭발
을 하면
나도 독존獨尊이 될 수 있을까 부처가 될 수 있을까
탐진의 검은 머리터럭과 붉은 몸통을 깨끗이 털어 내버리고
노란 양은 쟁반 위에 결가부좌로 들어앉아
인간의 주불主佛이 된
저 돼지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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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지 |
| 배한준 - 경북 부림 6년 |
거지가 쌀을 얻으러 와서 나는 얼른 내주었다. 엄마가
"쌀을 얼마나 주었노?"
하시며 물었을 때
"한 대지비 주었다."
했다.
"와 그래 많이 주었노."
"뭐 많이 주었노. 줄라카마 다섯 대지비는 조야지."
하지만 엄마 때문에 잘 못 준다.
주선이 저거 엄마는 옷까지 준다고 한다. 참 착한 사람
이다.
난 거기에 비하면 그렇게 착하지 못하다. 선생님은 불쌍
한 거지가 있으면 자기 옷이라도 벗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했다. 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거지가 쌀을 얻으러 오면 가여워 쌀을 준
다. 엄마에게 뚜두리맞지만......
1987.6.20. 토
꽃교실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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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변
김상국
1.
가슴 깊숙히 심장박동은 쉬지 않는데
너는 왜 침묵하고 있냐 침묵이 좋아서냐
말할 수 없이 고통이 심장을 겨냥한다
왜 고통스러우냐 하면 침묵 때문이냐
하물며 현미경 속 생물도 아우성치는데
창가로 스며든 직사각형 빛 속에도
뒷마당 한켠에 뒹구는 잎사귀에도 또는
왁자지껄한 골목길 전철역 입구 통로
모든 움직임이 뚜렷한데도 왜 침묵하냐
그렇다 침묵은 거울 속 깊이
아주 깊숙히 돌처럼 침잠해있다
2.
지금껏 석자 이름 걸어놓고 한 게 뭐냐
차디찬 얇은 얼음장 위에 써놓은 것이냐
살아온 날이 살 날 보다 짧았다는 것을
살 날이 살아온 날 보다 길었다는 것을
살아온 날이 살 날 보다 길다는 것을
살 날이 살아온 날 보다 짧다는 것을
넌지시 이해나 할 수 있으련가
그리하여 너는 부끄러움을 감추려 침묵하려 한다
3.
새벽녘 침묵을 깨는 소리가 있다
새소리도 아니고 둔중한 기계음도 아니다
하얀 심장의 소리다 공명처럼 커진다
안으로 곰삭는 침묵을 침묵을
왜 너는 아직껏 깨지 못하는가 아픈가
오늘도 비명이 들린다 길거리에서
아니다 너의 심장 밑바닥에서 애처롭게
그래서 얻은 게 무엇이더냐
침묵 침묵 또 긴- 침묵이냐 자신없다
오늘따라 책상머리 벽에 걸린 정물화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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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