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오, 그 通俗

조윤희

너와 내가 한 공간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창 밖의
풍경과 네가 바라보는 창 밖의 풍경이 서로 다르듯이 너와 나 사이에 말하여
지지 않는 침묵들이 견고하다 실없는 너와 나의 웃음소리,티브이 속의 개그
콘서트, 드라마 속의 낯설은 청춘남녀들의 얼키고 설킨 사랑이야기, 부질없
다.부질없다, 손사래 쳐가면서도 붙박히는 시선 멍-개짖는 소리 고여 있는
탁한 숨결 속에서 실뿌리들이 내려 허연 거세된 욕망의 실뿌리들이 내려 바
닥에 쌓이고 무거워진 서로의 덤불들이 서로의 목을 조르고 서로가 숨통이
끊어질 듯 널브러진 채 제발이지 나를 묶어줘,아니 나를 잘라줘,옥신각신 칭
칭 감기는 오래된 인연의 낡은 동아줄에 돌돌 말려 굴러가고 있는 탄성을 잃
어버린 공,건드려도 튀어오르지 않는,무겁게 굴러가는 공허를 굴리느라 지
친 너와 나는 그냥 임의없이 바라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없어진다 그저 허
공을 바라보듯 바라본다 하나의 먼 풍경처럼 바라본다 우리들의 소통의 언어
는 점점 점입가경이 된다 소통인지, 불통인지,물통인지,술통인지,여물통인
지를 모두 통과해 간다 비어가는 통통통,늘어가는 뱃살과 권태와 비애와 연
민과 지나간 추억들이 버무러져 술로 익어가는 오크통 속의 남녀, 부부라는
이름의 실내악이 흐른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애달픈 음악이 흐른다 부글부글
술이 익어간다

고무신

안순녀 - 가평 백둔국교 6년

오늘은 무엇보다도
내 고무신이 부끄러웠다.
읍내 학교로 시험 보러 가는데
고무신 신고 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운동화 없는 사람은 친구 운동화를
빌려 신고 오라고 했는데
그냥 왔다고 선생님이 꾸지람했다.
선생님이 무서웠다.
맨날 고무신만 사준 아버지가 미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 보이지 않는 연민 , 설국과 사랑
구수경

설국.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하이얀 세상이다. 하이얀 눈으로 덮인 세상을 뒤로 하고 보이지 않는 , 잡을 수 없는 조용한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은 행복하기 보다는 너무나 가슴이 벅차 슬플 지도 모른다. 청명한 햇살이 너무도 눈이 부시면 감히 두 눈을 뜰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려낸 동양의 세계 , 동양의 여인은 서로가 부합되어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설국이라는 배경은 , 신비스럽고 고요한 동양의 세상에 슬픈 축복을 뿌려놓은 듯 아름다우면서도 애수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한 배경이 하얀 피부를 가지고 깨끗이 기모노를 차려입은 일본 여성의 등 뒤로 내비치면서 우리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 청자빛깔과 같이 잔잔하면서도 짙은 사랑의 향기를 맡는다.

불꽃처럼 정열적으로 타오르고 , 한눈에 빨려들어가 미칠 듯이 서로를 원하고 , 육체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만이 사랑은 아닐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소리 없이 언제 지나갔는지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게 왔다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안타깝게 하고는 가버리는 애속한 것이 사랑일는지도 모른다.

설국은 눈이 쌓인 일본의 한 지방을 의미한다. 나는 그의 소설에서 일본의 문화와 생활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노벨 문학상을 거머쥔 것도 , 이런 영향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다는 큰 선물을 얻는다. 이런 점에서 설국은 그런 선물을 제대로 안겨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일본 외곽 지방의 풍습과 일본인들만의 정서를 소리없이 전달해주고 있다. 포근하면서도 차디찬 설국 속에서 연기를 뭉게뭉게 피어오르게 하는 온천탕과 기모노 , 게이샤 .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 동양 ' 의 신비스러움을 , 우아함을 , 소리 없는 아름다움을 가슴에 심는다.

설국은 또 다르게, 사랑을 의미할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소리가 없다. 단지 눈 위를 걸어갈 때 들리는 작은 ' 뽀드득 ' 소리. 그것만이 들릴 뿐이다. 이들의 사랑은 절제되어 있다. 폭발하듯 피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이들은 스스로 절제하고, 절제를 통해 목구멍으로 치솟아 오르는 사랑의 슬픔을 삼킨다. 사랑한다면 , 슬픔을 자신의 영혼 속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들의 사랑은 미묘하고 신비스럽다. 사랑의 주인공이 둘인지 셋인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잠시 스쳐지나가도, 찬 겨울 바람이 심장을 뚫고 지날 때 느껴지는 떨림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들의 사랑은 또한 항상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다. 꺼질 듯 말 듯 하다. 이루어질 듯 말 듯 하다. 언제나. 그러기에 이들은 항상 사랑을 손꼽아 기다린다. 하지만 정작 내 사랑 당신을 만날 때면 서로에게 느껴지는 멈추지 않는 연정, 연민을 감추고 소리를 내지 않고 얼굴만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인간의 운명이란 말인가. 닿아있으면 만질 수 없고 , 만질 수 있으면 저절로 자신의 손을 등 뒤로 감추어 버린다. 한없이 절제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거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 결국엔 자신의 삶과 함께 칡덩굴처럼 얽매여져 있는 운명을 가슴에 담고서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먼 날을 기약한다. 너무나도 큰 애수가 흐르고 , 너무나도 큰 깨끗함이 흐른다. 투명한 거울로도, 설국의 산등성이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시내로도 대신 할 수 없는 고귀한 깨끗함이.

일년에 한번 오는 길고 긴 겨울. 하지만 어느새 너무나 짧아져 버린 설국의 겨울은 이렇게 아쉽게만 지나가고, 운명의 수레바퀴는 여느 때처럼 바뀜 없이 돌아간다. 힘겨운 인간의 삶 속에서 , 가끔 때때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랑의 애수와 떨림과 연민과 그리고 슬픔이 영영 사라질까봐 겁이 나기도 하지만 짧은 순간이나마 사랑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나는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런 아픈 사랑이라는 것을. 절제된 사랑이라는 것을 ,눈물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 연민을 품고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설국이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나의 부족함으로는 모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확실히 느끼는 것은, 사랑은 아름답지만 한순간에 그만 지나가 버리고 , 후에는 끊임없이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게 만드는 하얀 세상, 설국 이라는 것이다. 보기 힘든 아름다움의 극치, 설국 이라는 것이다.
결국 지나고 보면 허무한 우리네의 인생사처럼 사랑 또한 그렇게 허무하다. 그것이 사랑이고 , 나는 설국 이라는 동양의 세계, 동양의 정서를 통해 그것을 알았다. 누군가는 희뿌옇게 느낄 수 밖에 없는 ' 동양 '을 통해서. 동양의 그림이라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