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황구

문정영

신용산역 호프집 만남의 광장에 오면
그를 만날 수 있습니다 늘 길 쪽으로 몸을 틀고 앉아
교차로에서 짐차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황색털 안에 햇빛이
집 한 채 짓고 있습니다 한낮에도 시장의 야채꾸러미처럼
엎드려 있는 그는 말라버린 젖꼭지를 아직도 땅에 물리고 있습니다
다 자란 새끼에게 마지막 젖줄을 내어주고 있는 듯합니다
어미임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눈 속으로
신호등 없는 사람들이 건너다닙니다

그가 그렇게 숭고하게 보이는 것은 전자상가 쪽으로
배달되는 무수한 전자칩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군가 쓰다가 낡거나 고장나면 버리는
일상들을 그는 쓰레기봉지에서 자주 찾아냅니다
그가 바라보는 나 또한 그렇게 버려진 칩 중에서
날이 나간 칩 하나가 아닌가 생각해 보다가
그가 웅크리고 있다 일어난 따뜻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봅니다

전과

박점화 - 안동 대성국교 4년

국어 숙제를 하려고 주탁이한테 가서 "주탁아, 전과
좀 빌려 줄래?"하니 "아해."하고 말했다.
집에 오니 엄마가 물었다.
"왜 그노?"
"주탁이가 전과 안 빌려 준다 그잖아."
나는 그만 울어 버렸다. 엄마가 언니한테 말했다.
"앞에 할매네 집에 가서 좀 빌려 조라."
"어유, 지 숙제하는 것도 남한테 그나."
언니가 성을 내면서 갔다. 언니가 갔다 오더니, "진국
이가 없다 그드라."하고 말했다.
한참 있다가 엄마가 나갔다. 엄마가 전과를 얻어 왔
다.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자. 이거 쓰고 갖다 조라. 진우 거다. 책방이 있으면
금방 사줄다."
"엄마, 진우도 안 준다 그다?"
"진우는 주드라."
나는 진우가 좋았다.

제목 : 빈 바람만 스치는 때 (1)
쓴사람 : 마음한자락

나는 산책을 즐기는 분위기다.
가슴이 더더욱 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고작 내 가슴에 남는 부스럼 같은 상처가 산책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또는 바람이 불때나,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나는 어김을 맞는다.
항상 그랬듯이 내 가슴이 달갑지 않을 땐 더더욱 그렇다.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이란 일고의 가치가 없다.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라도 그렇다.
너무나 고립된 창살의 틈이라고 할까?
즈으기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햇빛이 스밀 때 나는 희망을 생각한다.
가끔은 그런 떨림이 긴장된다.
분명 내가 가야 할 기로, 그 길이란 것이 뻔한 일인데도 난 생각치 않는다.
무작정 나서는 괴벽도 있다.
그저 무심히 걷는게 좋아서 괴벽을 일으킨다.
한 때는 이런 모습을 하고 문득 야밤에 산책을 한다.
몽뮤병인듯한 걸음걸이 그러나 난 정신을 모두고 있었다.
행동과 정신이 따로 노는 듯 하지만 그것은 혼연일체라고 생각했다.
발길은 야간 포장마차로 걷고 있었다.
후각을 꼬드기는 꼼장어 구이 타는 냄새와 목젖을 댕기는 시원한 소주 맛이
야밤을 탈출케 했다.
탈출한 행동 대원은 내 신체 부위 중 발길 이였고 수뇌 작전 지시는 머리에서 하달 되였다.
잠들지 않은 눈동자와 귓전은 생생했다.
밤빛 어둠에서의 졸고 있는 전등과 비스듬히 내리는 그림자가 내 옆자리에서
한잔의 소주를 따르고 있었다.
야밤에 소주라.
그것이 나의 불현듯 생각 없이 저지른 조그만 반란 이였다.
아무리 가슴에서 지우개로 지워 낸들 다시금 피어오르는 옛날의 부스러기들
아무리 소독을 해도 다시금 꿈틀거리는 상처들은 쉬이 잊혀지기란 힘들다.
난초 같은 인내심 그윽함이라 해도 나는 그 인내를 모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약한 내 모습은 어딘가에 서 나온다는 점이다.
아마도, 인동의 추위도 한 서림도 나는 감내 할 수 있는 스스로의 제어장치가 작동되어야 하는가 보다.
스스로 작동되는 단말 시스템처럼 알아서 작동되는 삶이라면 좋겠지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완벽한 것 보단 나의 어스룩 한 세상 보기가 더 맘에 든다. 때로는 말이다.
때론 오작동 되는 수도 있다.
나의 심기에는 이름 모를 악습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니면 분해 될 수 없는 원인균, 원자의 핵이라면 분명 삭힐 수 있는 마법의 기술을 득도해야 할 것이다.
그 길이란 먼길인가? 그러나 가고는 싶지 않다.
멀든 짧든 가야만 한다. 하지만 헛점으로 남고 싶다.
헛된 꿈의 반란이 일어나도 빈 바람이 스쳐도 가야만 된다.
그리고 걸어야만 한다.
헛점인 나의 그 길로 빈 바람만 스치는 때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빈 바람만 스치는 때 더더욱 가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