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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은 곳 |
| 심재휘 |
비 온 뒤
빈 장독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세상이
내 마음에도 하나 쯤 있다는 것을
안다
천천히 장독대를 내려와
푸른 대문을 열고
물 고인 웅덩이를 지나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그 계집애 뛰어가듯 모두
길모퉁이를 돌아 사라져 갔으나
나의 쓸쓸함마저 한 마리 짐승처럼
높고 둥근 그 곳을 떠나갔으나
사람 많은 거리에서 혹시 누가 나를 부르듯
비 오고 바람 불 때에는 더욱 심하게
마음의 저 밑바닥에서 웅 웅 거리는 소리
그것이 내 안의 어둠인 줄 알았으나
비 온 뒤
빈 장독 같은 내 안을 들여다보면
어둠 속에서 일렁거리는 얼굴
나는 그 높은 곳에서 오래 전에 내려왔지만
여전히 그 곳에서는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나를 기다리는 얼굴 하나
맑게 갠 하늘 속에 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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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
| 김두기 - 경북 안동 대성국교 6년 |
우리 집에는 암소 한 마리를 기르고 있다. 벌써 새끼를 낳
아 가지고 팔았다.
지금 있는 암소는 무척 애를 먹였다. 고추 밭에 밭갈이를
하는데 일을 하도 많이 해서 다리에 허물이 벗겨져 피가 흐
를 때도 많다. 큰형이, 우리보다 일을 백 배보다 더 많이 한
다고 하였다. 아버지께서는 소가 없으면 밭을 못 간다고 하
신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소꼴을 하라고 하신다. 어떨 때는 소
를 풀어 가지고 풀을 뜯어 먹이기도 한다. 요사이에는 이웃
집에서 밭갈이를 하는데 아직도 논을 갈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형은 자꾸 소를 팔자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안 판다고 한다. 우리는 벌써 고추를 다 심었다고 팔자고 한
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안 판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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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고 아름다운 장독대를 만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습니다.
담 밑 울타리 담쟁이 덩굴 뻗어 있는 곳. 또 그 옆에 물방울 송송 맺힌 토끼풀 흐드러지다.
시집 신청 좀 하셔요 우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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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