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곁의 시한편

내 곁의 시 한편

새벽, 강가에서

정선호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요. 젊었던 시절엔 내 곁에 자주 와 마시던 술도
부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더니. 이제야 찾아오셨군요. 최루탄 냄새 가득 배
인 옷을 입고 빈 원고지 가슴에 품어 이곳에 왔다가. 내가 뭉텅뭉텅 피워
올리던 안개를 잡으러 뛰어 다니던 친구들은 어디로 보내고, 홀로 여기에
오게 되었되지요. 하기야 요즘 같은 세상에 당신도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홀로 오기 힘드셨겠지요. 아직도 세상은 뜨거운 눈물 마르지 않
고, 봄이 오면 내 몸에 풀꽃들 어김없이 돋아나는데, 당신은 알면서도 애
써 외면하지는 않았겠지요. 마음은 늘 이곳에 있으면서. 그저 먹고 살기
가 고되어 할 말은 많았지만 참아내야 했다고 속으로 말하고 싶겠지요.

오늘은 다시 추억만으로 내 어깨를 잡아주고 풀꽃들에게도 인사를 하시
지요.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를 인연이지만 나는 그대 안에서 언제나 끝
까지 흐르고 있을 테니, 언제라도 찾아와 주세요

신문 배달

전성열 - 강원사북국교 6년

12월 13일

한국일보 배달을 하는 병태는 지국장이 모자와 양말을
주었다. 속으로 우리 지국장은 무엇을 주지 않나 생각했
다. 저녁에 보니 모자는 별로 좋지도 않았다. 괜히 내가
나쁜 생각을 한 것 같다.

12월 14일

신문 배달을 하다가 넘어졌다. 신문이 다 흩어졌다. 형
이 다 주워서 가지고 갔다. 나중에 보니 손전등이 깨어졌
다. 삼촌한테 고쳐 달라고 했다. 손전등이 망가졌을까 봐
무척 걱정을 했다.

12월 15일

신문 배달을 오늘은 쉬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2시
30분이었다. 매일마다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물든 것 같
다. 신문 배달을 하지 않고 이렇게 일찍 일어날 수 있었으
면 좋겠다.

12월 16일

저번서부터 형과 신문을 같이 가지고 다녔는데 요즘에
와서는 형이 신문을 더 많이 든다.
형에게 신문을 더 가지고 가라고 했다. 형이 싫다고 했
다. 그래서 내가 떼를 써서 형이 더 많이 가져갔다. 참 고
집쟁이인 것 같다.

12월 17일

신문 배달을 하는데 신문을 넣지 말라는 집이 있었다.
이런 집을 지국장께 말하면은 지국장 아저씨는 계속 너라
고 한다. 넣지 말라는 집을 넣을 땐 겁이 나서 넣고 도망
을 간다. 너라는 집은 넣지 않고 넣지 말라는 집은 안 넣는 것
이 상책인데 지국장 아저씨께서는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12월 19일

우리 사람들은 왜 이렇게 얍삽한지 모르겠다. 제일 약
국이 신문을 안 본다고 하였다. 이번 달만 보라고 하니
무조건 넣지 말라고 했다. 신문대를 받으려고 한 달의 반이
넘었으니 보라고 했는데. 이런 집에는 이번 달이 넣은 신
문 다 달라고 하고 싶다.

12월 20일

팽이를 치고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께서 갑자기 팽이채
로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미칠 것만 같았다.
아버지께서 공부를 안 한다고 그랬다. 그리고 6년 동안
우등상도 하나 못 받았다고 욕을 했다. 이번 겨울 방학으
로 아버지를 놀라게 해주고 싶다.

12월 22일

형하고 신문을 똑같이 가지고 간다. 형이 다 돌리고 나
면 내 신문을 거의 다 들어 가지고 들고 다닌다. 나는 형
의 것을 안 들고 다니는데 형은 나의 신문을 들어 주니
내 생각에 나는 너무 얍삽한 것 같다.

12월 23일

역전에서 재호가 장갑을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그래서
신문을 다 둘메쳐 가지고 재호 형한테 맞았다. 신문 안 돌
린다고 그러면서 재호가 자기네 형에게 신문을 주니 신문
밑에 있었다. 장갑을 가까이 내비두고 못 찾으니 참 우스웠다.

*둘메쳐 : 둘러엎어, 내비두고 : 놔 두고

제목 : 살다보니 이런일도
쓴 사람 : 높은 하늘님

멀지 않았던 어느해
우연히 소지하게된 접속 CD 가운데
여주인공인 전도연의 멘트가 있었다
'나는 눈물이 안나요' 라는 대목이다

그 당시 40을 훨씬 넘긴 나이였음에도
눈물샘이 말라 눈물이 안난다느 대사가 왠지 낯설은
사치스러운 꾸밈 같다 생각해었다

한치 앞을 모르는것이 우리네 인생 이라는것을
증명이라도 시키려는듯
요즘 내가 위의 멘트 같은 처지가 된것이다

조짐의 전조가 꽤나 여러달 되었는데
무신경한 나는 그냥 지나친것이다
안질이 생기고 눈이 항시 뻑뻑한것이
요즘은 안약을 흘러보내 참새 눈물 같은 눈물이라도
찔금 거려야 마음이 평안해 지는것이다
마눌은 컴 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단정을 내려버리는데
허 ~ 참
거의 7~8 개월은 컴을 놓다 싶이 했는데
나의 변화 되어진 감정은 아예 모른다

내가 눈물샘이 말랐다 자각하게 된것은 최근 한달여다
내가 나를 누구보다 잘아는데
우연잖게 빌려온 국내 비디오 에서 분명 내가 슬프게
느껴졌던 프로가 있었다
평소의 나라면 응당 두줄기 눈물이 흐르며
체면 불구하고 손 잔등으로 눈물을 훔쳐 딱아야 할것인데
그저 눈가만 붉어지고 마는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려니 했는데
여러번에 걸쳐 같은 경우를 당하고
요 일간에도 마음에서는 울고있고
눈물이라도 나와야하는데 그게아니었다

나이 들어 풍부해 지는것이 감정이라는데
나는 거꾸로 가고 있다 생각하니
곰곰 원인을 짚어봤다

지난 여름 더위가 나의 눈물샘을 마르게 했다는
결론에 도달해봤다
그려 몇십년 내에 겪어보지 못했던 끔찍한 혹서였지 하며
씁쓸한 미소를 머금어본다

사치스런 언어의 유희라 여겨지던 눈물샘이 마른다는 얘기가
지금 내게는 새삼스런 말이 아니다

의 맑은 햇살 한자락에서 보내졌습니다.